여행은 살아있는 인문학
여행은 살아있는 인문학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7.14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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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 너구리가 한반도를 살짝 비켜가면서 무더위가 시작되고 있다. 바야흐로 피서의 계절이다. 해안가나 계곡 또는 농촌으로 찾아 들어 더위를 잠시 잊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무더위를 무릅쓰고 여행에 나서는 사람도 있다.

여행에 대한 오랜 기억으로 단연 수학여행이 떠오른다. 70~80년대 시골 초등학교와 중학교는 대부분 서울로 수학여행을 갔다. 그러나 필자는 불행하게도 어떤 연유로 초등학교 수학여행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으로 기억된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수학여행을 못 간 것이 아니라 다녀온 이후 학교 수업에서 간간히 선생님과 학우들이 서울 구경이야기로 수업을 진행해 나갈 때 말할 수 없는 소외감 같은 것을 느꼈다는 점이다. 그 당시 서울은 우리들에게 미래의 신기루 같은 것이었다. 이를테면 수학여행 하나로 인생의 목표와 공부의 목적이 달라지는 계기가 될 수 있었다.

세월호의 희생자 대부분이 수학여행을 가던 학생들이다. 그러니 이제 21세기 수학여행은 좀 달라 져야하지 않을까. 30여년 전처럼 인생에 꿈과 희망을 줄 수 있었던 여행취지도 살리고, 오늘날 청소년들에게 미래의 꿈과 희망을 보다 선명하게 제시할 수 있는 수학여행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수학여행의 교육적 효과를 처음으로 주장한 사람은 ‘페스탈로치’ 로 스위스의 교육자, 사회비평가였다. 그가 주장한 교육의 목적은 ‘머리와 마음과 손’의 조화로운 발달과 노동 행위를 통한 교육과 실물(實物)의 직관적 교육을 스스로 실천하였으며, 학교 교육의 한계를 벗어나 여행을 통한 지덕체의 전인교육으로 완성하고자 했었다.

유대인들의 교육법 중에서는 청소년기의 수학여행지로 반드시 들러야 하는 곳 중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유대인들에게는 오랜 핍박의 역사가 있었다. 그 곳을 둘러본 어린이들 대부분은 눈물범벅이 되어 나온다고 한다. 힘이 약하면 억울하고 힘든 일을 많이 당할 수밖에 없다. 부당하게 당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 곳을 다녀오도록 하는 목적은 스스로 삶의 목표와 자세를 확립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독일인을 미워하는 유대인은 없다. ‘용서는 하지만 잊지는 말자’는 특유의 유대인 교육 철학이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행이라는 말은 스스로 나그네가 되는 것이겠으나 관광, 휴양, 탐방, 답사, 기행 등 목적에 따라 약간씩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행(旅行)은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관광(觀光)은 다른 지방이나 다른 나라에 가서 그곳의 풍경, 풍습, 문물 따위를 구경함. 탐방(探訪)은 어떤 사실이나 소식 따위를 알아내기 위하여 사람이나 장소를 찾아가거나, 명승고적 따위를 구경하기 위하여 찾아감. 답사(踏査)는 현장에 가서 직접 보고 조사함. 기행(紀行)은 여행하는 동안에 보고, 듣고, 느끼고, 겪은 것을 적은 것.”(출처: 네이버 사전) 같은 듯 다른 의미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청소년들이 각 학년별로 읽어야할 권장도서를 지정하고 권면하는 것처럼, 권장 여행지를 지정 운영하고 개별적으로 가도록 할 것인지 단체로 체험토록 할 것인지에 대한 깊은 이해와 실행이 뒤따르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여기에는 가족 간 느낀 점을 소통하고, 학우들이 서로 느끼고 공감하는 부분을 공유하게 하고, 선생님이 교육적으로 학습을 시켜줘야 할 영역 등으로 철학적 가치를 부여하여 스스로 자신의 삶의 자세를 만들 수 있도록 해보자. 여행은 살아있는 인문학이다. 청소년들이 인문학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다.

<김재범 자운도예연구소 도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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