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다른 기억
서로의 다른 기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7.0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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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에 부부싸움을 너무 크게 해서 112신고를 통해 경찰서에 들어온 부부가 있었다. 형사과 사무실에 앉아있는 그들은 명색이 부부인데 원수도 그런 원수가 없어보였다. 아내의 머리는 마구 헝클어져 산발이 돼 있었고, 남편의 목덜미에는 손톱으로 긁힌 자국이 선명히 나 있었다. 얼마나 잘했냐고 큰소리를 치는 남편 앞에 아내의 서러운 울음소리는 더 커져만 갔다. 가족의 행복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풍경이었다.

경찰서에 있다 보면, 이렇게 서로 갈등을 겪어 들어오는 사람들을 많이 보게 된다. 드물지 않게, 부부들이 가정폭력을 일으켜 들어오기고 하고, 20년 넘게 친했던 친구들이 사소한 말다툼으로 경찰서에 들어오는 경우도 왕왕 있다. 그동안 서로 잘 지내다가 왜 그런 것일까.

서로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서로의 기억이 다르다는 것이다. 수십 년을 함께 살아 온 부부나, 오랜 시간 우정을 나눈 친구들이 서로 소중한 추억에 대한 기억들이 다른 경우가 많다. 같이 산 부부가 많나 싶을 정도로 과거에 대한 이야기가 서로서로 다르다. 한쪽은 그 추억을 아주 소중하게 간직하는 반면, 다른 한쪽은 그 시간을 고통과 인고의 시간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과거의 사실은 고정된 하나인데 왜 서로의 기억은 그렇게 각각 다를까. 답은 간단하다. 그때마다 제각각 자기의 입장에서 감정을 추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싸우고 들어온 사람들을 조사할 때, 형사들은 화해를 유도하기 위해 싸움의 근원인 감정문제를 슬쩍 슬쩍 건드려 준다.

갈등의 발단이 절대로 풀 수 없는 문제가 아닌, 서로의 감정에 대한 오해였음을. 그래서 마음을 조금만 열어도 그 오해를 풀 수 있고 문제는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계속 각인시켜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거는 정말 바꿀 수 없는 것일까. 그리고 바꿀 수 없는 과거는 어떤 것인가. 우리가 흔히 바꿀 수 없다고 말하는 과거는 단지 어떤 ‘사실’일 뿐이다.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는 것은 그 어떤 사실이 아니라, 그 사실에 덧입힌 우리의 감정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기억에 대한 감정만이라도 잘 풀어나가면 좋지 않았던 과거의 기억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때문에 행복하려면 과거의 감정상의 기억부터 바꿔야 한다. 살아오면서 누구나 아픈 기억들은 하나둘 있게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안 좋은 기억들을 어딘가에 처박아 놓고 쳐다보지 않는다고 해서 해결되진 않는다. 어쩌면 그 기억이 썩어 우리도 모르게 감정의 물결을 탁하게 할지 모른다.

그래서 그런 아픈 기억들에 대한 감정을 나름 정화하는 것이 오히려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아마 그때보다 훨씬 성숙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과거의 아픈 기억들을 꺼내본다면, 그것만으로도 행복의 기초는 닦은 셈이다.

서로 갈등을 가지고 경찰서에 들어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봐도 그 점에서는 일맥상통한다. 과거의 사소한 감정들이 쌓여 결국 현재의 탁한 감정의 흐름을 만들었고, 그러다 아주 조그만 문제에도 서로간의 갈등이 촉발된 것이란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일은 비단 경찰서 안에서 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사회생활, 가정생활을 하는 중에도 분명히 부딪히는 감정의 파일들이 쌓여갈 것이다.

그것에 대해 일일이 서로 오해를 풀 수는 없지만, 최소한 일정기간에 한번 씩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필터링을 시킬 필요는 있다. 적어도 우리가 행복해지려고 한다면 말이다. 우리 사회도 서로 같은 일을 두고 반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서도 항상 과거를 잊고 미래를 준비하자고 한다. 그러지 말고, 용기 있게 과거를 직시하고, 서로의 감정을 푸는데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강윤석 울주경찰서 형사과 경감·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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