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회-2. 칼 앞에 맹세(6)
18회-2. 칼 앞에 맹세(6)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25 2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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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을 받은 사람은 진패주왕이었다. 왕은 아연실색했다. 탁기탄국(영산가야)과 탁순국(창원가야)이 신라의 침공을 받았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 왕은 온종일 침소에 칩거하며 치를 떨었다.

가라(고령가야)의 이뇌왕이 불러들인 신라의 세력에 의해서 (가야)연맹의 국가가 무너졌다는 것이 너무나 충격적이었다. 아직은 신라와 직접적인 격돌은 없었으나 나머지 나라들에서 동요가 일기 시작했다.

이러한 동요로 인해서 결국 가라 중심의 연맹이 붕괴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 서남쪽의 여러 연맹국들이 아라국(함안가야)을 중심으로 세력을 단합하여 신라와 맞서게 될 때 다라국(합천가야)의 설 자리가 어려워질 것이며, 그로 인해 맹주국인 가라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다라의 설 자리 역시 어려워질 것을 생각할 때 진패주왕은 마음이 무거웠다.

그러나 자신이 불러들인 신라의 세력이 결국은 탁기탄국을 무참히 무너뜨리고 탁순국의 변경 지역을 초토화시켰지만 가라의 이뇌왕은 어떠한 대책도, 언급도 없었다. 이뇌왕은 자신의 비(妃)를 신라로 돌려보내지 않은 후환이 두려운지, 아니면 빼앗길 뻔했던 왕비를 품에 안고 꿈속에 빠져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진패주왕은 그것이 답답했다. 왕은 가장 인접해 있으면서 오랜 세월 동안 유지해왔던 가라국과의 관계가 불안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힘을 얻은 것은 필모구라 하한기였다. 그가 한결같이 말해왔던 신라를 배척해야 한다는 주장은 더 힘을 얻게 되었고 조정에서도 그를 동조하는 세력이 더 늘어났다. 그는 의기양양했고 눈에는 살기가 번쩍였다

필모구라는 자신이 한때 성주로 있던 무태산성으로 자신을 따르는 여러 곳의 군장들을 불러 모아 마치 조정에서 하는 일을 성토라도 하듯 신라군에 대한 저주와 분노를 쏟아냈다. 그는 그 자리에 온 성주들에게서 술을 내리고 자신의 편에 서서 신라에 맞서자고 했다.

그의 신라에 대한 분노가 신라와 화친을 주장해온 무리들을 성토하는 말처럼 들렸다. 그는 친신라의 무리들의 중심에는 진패주왕이 있고 진패주왕 뒤에는 가라국 이뇌왕이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진패주왕은 가라와의 관계나 신라와 관계를 급격하게 변화시킬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가라의 정치적 영향력뿐만 아니라 외침으로부터 다라국을 방어해 주는 지리적 위치 때문이었다. 비록 맹주 관계가 아니라 할지라도 왕은 가라와 관계를 벗어나려 하지 않았다.

가라 이뇌왕이 신라에 청하여 왕녀를 왕비로 맞이할 때도 왕은 반기며 평화의 시대가 올 것이라 여겼다. 가라국의 평화가 없는 한 다라국의 평화는 어렵다는 것이 진패주왕의 한결같은 생각이었다. 한 때 손수 3천여 병사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 5천의 백제군를 격파하기도 했고, 신라를 도와 고구려와 싸워서 신라의 국경을 지켜주었던 것도 결국 가라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제 진패주왕은 노쇠해 있었다. 한때의 용기와 결단도 몸이 늙음과 더불어 쇠퇴했고 아직까지 가라의 등 뒤에서 나라를 지키려는 구태의연한 왕의 모습이 필모구라 하한기의 눈에는 참으로 우유부단하고 무력하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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