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월드컵 단상(斷想)
브라질 월드컵 단상(斷想)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24 21:4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브라질 월드컵 열기가 지구촌을 달구던 지난주에 필자는 동티모르에 있었다. 신생독립국가로서 국가를 재건하고 평화를 만들어가는 인도양의 가난한 섬나라 동티모르에서 필자는 그날 한국-러시아전 월드컵 축구경기를 보면서 새벽잠을 설친 채 ‘대~한민국’을 외쳤다. 하지만 이날 매우 인상 깊었던 것은 월드컵 본선에 출전하지도 못한 동티모르 사람들의 특이한 응원 장면이었다.

한국-러시아전 하루 전날 동티모르 전체는 월드컵 응원물결로 가득 차 있었다. 그것도 자국민을 식민화해 천연자원을 약탈해 간 포르투갈 팀을 응원하고 있었다. 집집마다 포르투갈 국기가 걸려있고 아이들은 그 국기로 망토를 만들고 청년들은 떼를 지어 돌아다니거나 오토바이에 매달려 ‘포르투갈’을 외치며 마을에 몇 대 없는 TV 앞에 모여 열렬히 응원을 해댔다. 수백년 식민의 고통을 겪은 동티모르 사람들이 포르투갈 팀을 응원하는 모습에 충격을 받은 필자는 현지 사람들에게 “왜 당신들은 포르투갈 팀을 응원하나요? 식민의 역사가 억울하고 그들이 밉지 않나요?”라고 물었다. 하지만 운전기사부터 고위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공통된 대답은 “이미 우리는 그들을 용서했잖아요.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의 역사적 잘못을 인정했고 진실한 마음에서 화해를 구했으니까요” 이었다.

이 말을 들은 뒤 아직도 일본팀의 월드컵 성적을 앙금어린 마음으로 기웃거리면서 묘한 경쟁심을 느끼는 우리 자신의 자화상을 들여다보았다. 아마 동티모르 사람들에게 포르투갈이나 인도네시아란 존재는 우리에게 일본이라는 역사적 존재와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 다만 큰 차이가 있다면 ‘진실과 화해위원회’ 활동을 통해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고 역사적 진실을 바탕으로 진정한 역사적 화해를 이루어 낸 동티모르 사람들, 아니 포르투갈, 인도네시아 사람들의 용기와 결단이리라. 그래서 고노 담화를 들먹이며 궤변으로 일관하는 일본의 위정자들에게 과연 ‘상속된 역사적 책무성’에 관한 집단적 양심이나 집단 지성을 요구할 수 있는지 반문해 볼 수밖에 없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적어도 일주일만이라도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춥시다’라고 무릎 꿇고 호소하여 내전을 종결시켰던 코트디부아르 드록바 선수의 이야기를 되돌아보면서 ‘보코하람’의 반인륜적 만행으로 고통 받는 2014년 나이지리아 사람들에게도 관심을 가져보자. ‘열정’과 ‘별’을 상징하던 2002 한일 월드컵 공인구 ‘피버노바’에서부터 금번 ‘브라질 사람들’이라는 뜻의 ‘브라주카’의 이면에 숨겨져 있는 파키스탄 어린이들의 아동노동 실태와 100원의 저임금 현실을 알아보자. 더욱 빨라진 ‘브라주카’의 스포츠과학에만 집중하지 말고 진정한 ‘브라질 사람들’의 얼굴이 보이고 목소리가 들리는 월드컵이 되려면 브라질 사람들의 월드컵 반대시위 목소리에도 귀 기울여 보자. 그리고 독립은 쟁취했으나 반복되는 반목과 질시, 내전으로 고통 받던 동티모르에서 초대 대통령 사나나 구스마오가 골키퍼 장갑을 끼고 축구장에서 시민들과 함께 뛰면서 관용과 용서의 뜻을 담은 ‘시무마루 캠페인’을 주창하던 축구공의 의미를 되새겨보자. ‘동티모르의 히딩크’라는 별명을 가진 동티모르 유소년 축구단의 김신환 감독의 이야기를 담은 ‘맨발의 꿈’이라는 영화를 지구촌 축제 브라질 월드컵 기간에 꼭 한번 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월드컵은 분명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기회균등의 평등사상, 반칙이 없는 지구촌 페어플레이를 지향하는 전 인류 축제의 장이다. 하지만 우리네 관심은 16강 진출이라는 결과물에만 과도하게 집중돼 있다는 데 유감이다. 월드컵 기간만이라도 지구촌 이슈와 친해지고 지구촌 평화에 관하여 성찰해보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희망한다.

<송진호 울산YMCA 사무총장>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