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2. 칼 앞에 맹세(5)
17회-2. 칼 앞에 맹세(5)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23 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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험준한 산을 넘으면 또 산이 앞을 막고 있었다. 산은 가파르고 높았다. 비탈길을 오르던 말이 미끄러져 병사와 말이 함께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기도 했다.

탁기탄국(啄己呑國)(영산가야)의 변경에 이르러 이사부 장군은 병사와 말을 하루 동안 쉬게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새벽에 병사를 일으켜 탁기탄국으로 향했다. 하루를 쉬면서 힘을 회복한 병사들이 말을 몰아 탁기탄국 궁성에 도달한 것은 해뜨기 전이었다. 탁기탄국 왕이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궁성을 지키는 대부분의 군병들도 이른 시간이라 무방비 상태였다. 성문은 열려 있었고 아직 잠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은 군병들도 있었다.

신라의 군병들은 궁성을 접수하고 탁기탄국 군병들을 닥치는 대로 죽였다. 궁성 안엔 죽은 탁기탄국 병사들의 시체가 널려 발에 밟혔다.

“궁성을 불태워라!”

이사부 장군의 명령은 냉혹했다. 궁성은 곧 불길에 싸였고 왕은 사로잡혔다. 왕은 신라와 내응한다는 소문이 나 있던 함파한기(函跛旱岐)였다. 사기가 오른 신라군들은 왕이 지켜보는 가운데 왕비의 옷을 벗기고 불에 달군 인두로 허벅지를 지졌다. 왕비의 비명소리가 날카롭게 바람에 날렸다.

왕은 쉬 항복하여 나라를 신라에 내주었다. 탁기탄국은 신라에 병합되었다.(529년)

빼앗은 나라에서 힘을 충전한 이사부의 병사들은 사기충천했다. 병사들은 칼을 맞고 쓰러진 탁기탄국 군장의 목을 잘라 창끝에 꽂아들고 남쪽 탁순국(卓淳國)으로 진군했다.

탁순국(창원가야)은 탁기탄국과는 달랐다. 탁순국은 탁기탄국에서 말을 달려 불과 한 나절의 거리에 있었지만, 탁순국으로 가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동서로 길게 가로누운 높은 산들이 마치 길게 이어진 난공불락의 성처럼 앞을 막고 있었다. 그 산 능선에 여러 개의 성이 있었다.

더구나 탁순국의 병사들은 산악 기마 기술이 뛰어났고 창을 다루는 기술도 뛰어났다. 왕의 성격을 닮아 병졸들도 용맹했다.

잘 훈련된 정예의 신라 기마병이었지만 탁순국의 군병들과 대적하기가 쉽지 않았다. 산성 아래 진을 친 신라 군사들과 탁순국의 군병들이 대치하며 며칠을 보냈다. 그러나 성안에 군병은 수가 많지 않았다. 적의 수적 열세를 간파한 이사부 장군은 성을 공격했다. 공성술이 뛰어난 신라 병사들은 성문을 부수고 성안으로 진입했다.

성을 지키던 탁순국의 병졸들은 힘없이 쓰러졌다. 신라군은 보름 만에 탁순국의 북쪽에 있는 5개 성을 함락시키고 다시 보름 뒤 북쪽 국경지역의 5개 성과 도가 등 3개 성을 함락시켰다. 성은 불태워졌고 성안의 사람들은 도륙되었다. 죽은 자의 피를 말 등에 뿌리며 신라의 기병들은 전의를 불태웠다. 그러나 탁순국 정예군의 방어에 막혀 더 이상 진격하지는 못했다.

이런 처참한 전황이 가야 여러 나라에 전해졌다. 전황을 전해들은 다라국(합천가야) 조정은 전율했다. 주변의 연맹국에게 군을 보내 도와 줄 것을 요청할 겨를도 없이 벼락적인 기습으로 탁기탄국을 멸망시키고 탁순국 변경마저 초토화시킨 신라의 전술에 다라국 조정은 충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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