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보이는 소리
안 보이는 소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22 19:2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지루한 일상을 지나다보면 단 하루라도 다른 환경이 간절할 때가 있다. 그날도 아마 그래서였을 것이다. 일단 집을 떠나보자는 생각에 남편을 부추겨 방향을 잡은 곳은 충북 ‘보은사’였다.

며칠간 음울하던 날씨는 맑았고 내려 쪼이는 따가운 햇볕이 여름을 실감나게 했다. 세시간 남짓 달려 ‘보은사’에 도착했다. 토요일이었건만 절을 향해 가는 길은 을씨년스러울 만치 한산했다. 우리 두 사람 외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안보여서 혹시 길을 잘못 든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낙후한 시설의 절 안에도 사람이 없기는 매 한가지였다.

뭔가 서운한 마음을 추스르며 절을 다 내려왔을 즈음에 올라갈 때는 안 보이던 문화관광해설사 한 분이 보였다. 궁금하던 몇 가지를 물어봤다. 해설사도 심심했던지 우리를 안내해 삼년산성 위에까지 올라가 이곳저곳을 돌며 여러 가지 설명을 해줬다. ‘보은사’는 원효대사께서 지으셨고, 원효종이라는 종파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신도가 없어 절은 문을 닫아야할 기로에 놓여 있다고 했다. ‘삼년산성’은 신라 최전방 산성으로서 단 한번도 함락된 적이 없는 매우 뜻 깊은 산성이라 했다.

설명이 끝나고 우리는 성 주위를 한 바퀴 돌아봤다. 걷는 동안에도 인적 없는 산성은 마치 신라시대로 들어 온 듯한 착각이 들었다. 신라인들이 성을 쌓고 지켜내기까지 겪었을 온갖 신산한 일들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다. 산 위로 돌을 날라 성을 쌓자니 그들의 고통이 어떠했겠는가. 또 그 산성을 요새로 삼아 적을 물리쳤으니 그들의 애환도 만만치는 않았을 것이다.

문득 그들의 숨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 같아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어쩌면 그들이 우리를 이리로 불렀는지도 모를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송글송글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훔치며 우리는 다시 김천 ‘직지사’로 방향을 잡았다. 직지사에 도착했을 때는 긴 여름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일단 가까이 보이는 곳에 숙소를 정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식당을 찾았다. 산골이어선지 음식은 주로 나물 종류였다.

저녁을 먹고 나니 나른하게 피로가 몰려왔다. 숲으로 둘러싸인 숙소는 분위기가 좋아 보였는데, 막상 계단을 올라가니 묵은 곰팡내가 코를 찔렀고 방은 생각보다 작았다. 하지만 별 도리가 없었다.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지만 좀체 잠이 오지 않았고, 낡은 대문이 삐그덕 대는 소리 같은 게 간간이 들리면서 자꾸만 무섬증이 들었다. 그렇게 TV를 보다가 간신히 잠이 든 시간은 새벽 두시를 넘기고 있었다. 한데 잠든 시간은 악몽의 연속이었다.

침대 밑에 무언가가 있는 듯한 느낌에 침대 아래를 보다가, 문이란 문들은 다 여닫기를 반복하다가…. 그렇게 어수선한 꿈속을 헤매다가 눈을 떴을 때는 희부염 하게 창이 밝아오고 있었다. 꿈이 어쩌면 그렇게도 실제와 같은 상황인지… 어쨌든 날이 샜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

어릴 때부터 눈앞에 안 보이는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유난했었는데, 어른이 돼서도 그런 증상은 줄어들지 않는다. 아니 더 명료한 것이 정말 기가 막히다. 하지만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증명해 보일 수는 없지만 그런 존재에 대해 무조건 무시할 수만도 없는 건 분명해 보인다.

삶은 늘 죽음과 함께 있다. 사람들은 태어나고 죽지만, 죽음과 동떨어진 삶은 없는 것 같다. 제사를 지내고 죽은 이를 기리는 것 자체가 그런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오늘도 가만히 기도한다. 부디 그들의 삶도 편안하라고.

<전해선 수필가>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