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회-2. 칼 앞에 맹세(4)
16회-2. 칼 앞에 맹세(4)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22 19:0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날이 밝고 서라벌의 사자들이 다시 정전에 들렀을 때 이뇌 왕은 궁녀들을 시켜 왕비를 데려오게 했다. 왕비가 정전에 나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나는 나를 낳아준 친정의 나라인 신라로 돌아가지 않겠소. 비록 지엄하신 전하의 명이기는 하오나 이미 이 한 나라의 왕비가 되었고, 이 나라의 대를 이을 태자를 낳은 이 몸이 어찌 혼자 서라벌로 돌아갈 수 있겠소?”

왕 옆에 좌정한 왕비가 입을 열었다. 왕비의 말은 차분했다. 사자들을 바라보는 왕비의 눈은 부드러웠지만 싸늘했다. 자신의 의지가 결연히 드러나는 눈빛이었다.

“신라에도 한 나라의 법도가 있듯이 이 나라에도 법도가 있지 않소. 내가 부모의 뜻을 쫓아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도 법도이기는 하나, 이 나라의 왕비로서 지켜야 법도가 더 크지 않겠소. 내가 낳은 아이를 키워야 하는 것도 어미로서 법도가 아니겠소. 그런데 내가 어떻게 신라로 돌아갈 수 있겠소. 내가 아이들을 버리고 돌아간다면 이 나라는 어떻게 되겠소?"

왕비는 격정을 억누르는 듯 잠시 숨을 돌렸다.

“하지만 왕비마마!”

신라의 사자가 고개를 들어 왕비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사자의 얼굴은 놀라운 빛으로 굳어져 있었다.

“뭐가 하지만이오? 내가 돌아가지 않겠다는데 뭐가 하지만이오?”

“하지만 마마의 부모나라인 대신라국의 왕명이지 않사옵니까? 왕명을 어긴 그 대가를 어떻게 감당하시려 하옵니까?”

사자의 얼굴은 더 굳어졌다.

“돌아가시오. 돌아가서 전하께 잘 전해 주시오. 소녀는 이미 이 나라의 몸이 되어서 돌아갈 수 없다고 말이오.”

왕비의 뜻이 단호함에 사자들은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었다. 곤혹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주억거리던 사자들은 정전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서라벌로 돌아갔다.

가라(대가야, 고령가야)에서 돌아온 사자의 말을 들은 신라의 법흥왕은 분노했다. 가라의 이뇌 왕이 양화공주를 놓아주지 않고 있다고 생각했다.

왕은 가야 제국 중에 몇 나라를 손에 넣으려는 오랜 야망을 실천할 수 있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가야 제국(諸國) 중에 반신라적인 나라를 침공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국의 맹주국인 가라의 이뇌 왕이 스스로 만들어 주었다고 생각했다.

“가야 제국(諸國)의 반신라적인 세력 중심에 탁순국(창원가야)이 있다. 탁순국을 치기 위해서는 먼저 길목에 있는 탁기탄국(창녕 영산, 밀양)을 쳐서 서남쪽으로 이르는 길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다.”

법흥왕은 이사부를 불러 탁기탄국과 탁순국을 침공할 것을 명했다.

“잘 훈련된 정예의 기병 5천을 이끌고 탁기탄국으로 출정하라. 그리고 나서 탁순국을 점령하라.”

왕의 눈에 살기가 번졌다.

명장 이사부가 이끄는 기병들은 길야성(울산)을 지나서 서쪽으로 길게 뻗는 험준한 산을 넘었다.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