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 가죽에 쓴 가로 왈자
사슴 가죽에 쓴 가로 왈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19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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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피지왈(鹿皮之曰)이란, 당기면 늘어지고 놓으면 쭈글쭈글 해지는 가죽에다 가로 왈자를 쓸 때 날일자로도 읽을 수 있음을 비유한 말이다.

얼마 전에 장래가 촉망되는 천재적인 여성 시나리오 작가가 지병과 가난으로 요절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글이란 영혼의 또 다른 표현이다. 그 영혼이 굶고 있었다. 가끔 영혼을 짓밟는 줄도 모르고 곧잘 글을 저울로 재려 함을 체험한다. 물론 남의 글을 가로채어 가는 예도 허다하다고 하지만, 아무튼 둘 다 똑 같은 부류이기는 마찬가지다. 글의 함량이 부족하면 그 글을 인용하지 않거나 퍼 가지 말아야 함이 옳음에도 불구하고 그 글을 퍼가고선 “당신의 원고가 얼마짜리라고 생각하시오!”라는 응답은 아연실색(啞然失色)할 따름이다. 이런 경우엔 어찌할까?

까마귀가 검다하지 말고 백로가 왜 흰 지를 물어라. 그리고 이방원(李芳遠1367-1400~1418-1422년 태종 임금)이 고려의 충신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1337-1392)의 마음을 떠보기 위해 지었다는 하여가(何如歌)를 즐겨 노래하리라. 그럼에도 가랑이 짧은 뱁새를 탓하기 전에 종종걸음을 부지런히 옮기는 뱁새를 칭찬하라고 말하고 싶다.

정도전(鄭道傳, 1342∼1398)의 글 중에서 ‘~~백성은 지극히 약하지만 힘으로 위협할 수 없고, 지극히 어리석지만 지모로써 속일 수 없다’라는 글귀가 떠오른다.

주변에는 한 사람이 주장하는 바른 이익을 무시하는, 그리하여 여러 힘이 결탁한 무모한 현상이 있음 또한 현실이다.

아래의 글은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 1541~1596)이 쓴 계산기선록(溪山記善錄)에 나온 글로 고전번역원에서 보내온 내용 중에서 메모해 두었는데 문득 다시 꺼내어 읽어 본다.

중국 당나라 때의 시성(詩聖) 두보(杜甫 712~770년)가 지은 수(愁)에 나오는 시구를 해석하는 퇴계(退溪) 이황(李滉 1501~1570년) 선생의 지혜로운 가르침의 일면을 엿보면서 진리는 살아 있음을 확인한다.

‘소용돌이 물에 목욕하는

해오라기는 무슨 마음일까?

외로운 나무에 피어 있는

꽃이 절로 분명하여라’

선생이 1561년 3월 두 제자와 함께 도산(陶山)으로 가는 도중에 산 위의 소나무 아래에서 휴식하면서 문득 두보(杜甫)의 시구를 읊으셨다.

제자 간재가 묻기를 “이 시의 뜻이 어떠합니까?” 하니 선생이 “스스로의 인격 수양을 위해 학문을 익히는 즉, 위기지학(爲己之學)을 하는 군자가 목적을 두어 작위(作爲)하는 바 없이 자연스럽게 사는 모습이 이 뜻과 은연중에 합치한다” 하셨다.

“해오라기가 목욕하는 것은 누구를 위해 자신을 깨끗이 하는 것이겠습니까. 꽃은 자연스런 모습으로 분명하고 자연스럽게 향기를 풍기니 누구를 위해 그러한 것이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선생이 이르기를 “이것이 목적을 두어 꾸밈없이 자연스럽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한 증거이다. 학자가 이 시구의 꽃, 해오라기에서처럼 목적을 두어 작위 하는 마음이 있으면 학문이 아니다” 하셨다.

가죽을 아래위로 당기어 날 일자라 우기면 어떠랴, 바닥에 놓으면 무위(無爲)인 것을. 해서 일체가 유심조 (一切唯心造)라고 하지 않던가.

<전옥련 울산문화관광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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