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회-2. 칼 앞에 맹세(3)
15회-2. 칼 앞에 맹세(3)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19 2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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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은 비를 안고 원앙금에 쓰러졌다. 눈물에 젖은 왕비의 얼굴은 더 아름다웠다. 왕은 왕비의 눈물을 혀로 핥으며 얼굴을 가슴에 안았다. 비의 몸은 따뜻했다. 비의 가슴도 뛰고 있었다. 산란했던 심사도 삭풍이 휘몰아치는 것 같은 나라의 일도 비(妃)를 가슴에 안으니 다 고요해졌다. 온천하가 고요하고 평온하게 느껴졌다.

비가 두 손으로 목을 휘감았다. 비는 늘 이렇게 적극적이었다. 때로는 얼굴로 왕의 가슴을 간질이기도 하고 때로는 사지를 뒤틀어 상대의 몸을 더 달아오르게 하기도 했다. 왕은 희열했다. 왕비의 가냘픈 그 신음소리에 몸을 떨며 왕은 비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궁성엔 온 나라 방방곳곳에서 뽑혀와 미색을 뽐내는 궁녀들이 수백명이 있고, 왕의 눈길을 받기 위해 온갖 교태를 부리기도 하지만 왕은 비를 능가하는 미색이 눈에 띄지 않았다.

함께 밤을 새운 후궁들만 해도 그 수를 셀 수가 없지만 비(妃)는 그들과 사뭇 달랐다. 비의 몸에선 늘 향기가 났다. 비의 몸엔 늘 밤이 그리워지도록 하는 특별함이 있었다. 서라벌의 여인들을 한번 안은 남자는 결코 서라벌을 떠날 수 없다는 그 말이 괜한 말은 아니란 것은 비를 처음 안은 날 왕은 알았다.

“나는 결코 당신을 보내지 않겠소.”

왕은 비의 귀에 속삭였다.

“당신이 없다면 저 금은보화도, 이 나라의 왕위도 다 무슨 소용이 있겠소?”

왕의 손이 비의 얼굴을 감쌌다.

“전하, 이 밤은 그런 말을 마소서. 비록 내일 내가 끌려가더라도 전하와 함께 있는 이 밤엔 그런 말을 마소서.”

비의 말이 물기에 젖어 있었다.

“그들을 그냥 돌려보내겠소. 비록 서라벌에서 병마를 이끌고 당신을 데리러 온다 하더라도 당신은 돌려보내지 않겠소.”

왕은 말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다면 신첩도 가지 않겠소. 제가 가지 않겠다고 한다면 저들이 어떻게 나를 끌고 갈 수 있겠사옵니까.”

왕은 비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스스로 남겠다는 비의 말에 왕은 자신도 모르게 핑 눈물이 돌았다.

“그래요. 저 아이가 자라 나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를 때까지 당신이 여기에 남아 아이들을 지켜 주시오.”

이뇌 왕은 힘주어 비를 안았다. 비는 다시 한번 두 손으로 왕의 목을 감았다. 둘은 더 격렬하게 하나가 되어 원앙금 위에 뒹굴었다. 온몸이 흥건하게 땀에 젖어서 비를 팔베개하고 있을 때, 궁성 밖에서 어디에선가 닭 우는 소리가 들렸다.

팔을 베고 잠이 든 비를 눕히고 왕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왕비가 스스로 가지 않겠다고 했으니 이제 서라벌의 사자를 돌려보낼 수 있는 명분이 생긴 것이다.

비록 사자가 돌아가서 어떻게 말하더라도 왕비가 가지 않겠다고 하는데 서라벌의 왕인들 어떻게 하겠는가. 아무리 서슬 퍼런 왕이라 한들 이 가라(대가야)국을 어떻게 하겠는가.

왕은 그렇게 생각하며 아직 여명이 오지 않은 궁성 밖을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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