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축소모형의 예방적 기능
[사설] 축소모형의 예방적 기능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7.12.30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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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영화이었던 것같다. 어느 사막에 불시착한 비행기를 다시 수리하여 탈출하는 독일 병정들의 이야기이다. 지휘관이 있고, 나머지 하급자들 대 여섯 명이 서로 의견이 맞지 않아 심하게 충돌하면서도 지휘관의 끈질긴 설득과 현명한 판단으로 비행기의 못 쓰게 된 부분을 다시 조립하여 이륙하는 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대목은 비행기의 못 쓰게 된 날개부분을 일부 잘라내어 다시 쓸 수 있게 만드는 장면이다. 비행기 수리전문가라는 병정과 비행기를 수리하여 탈출하겠다는 지휘관의 계획에 처음부터 부정적이었던 병정이 사사건건 다툰다. 비행기 수리를 전문적으로 지시하는 다른 병정이 여러 병정으로부터 추궁한다. 어디에서, 어떤 비행기를 만들었느냐는 질문에 ‘OO장난감회사의 모형 비행기 설계와 모형 비행기 제작 기술자’라는 정직한 답변에 모두들 기가 막힌다는 표정이다. 어이 없어하는 병정들을 옆으로 밀치고, 지휘관의 결정적 질문, ‘그래, 자네가 만든 모형 비행기들이 날 수 있었는가?’에 그렇다고 대답하자 지휘관은 결론을 맺는다. 실물을 일정한 비율로 축소하여 날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제군들은 아는가? 실제 크기의 비행기 만들기보다 더 정확해야 하고, 그만큼 오차도 적어야 한다고 강조하며 일을 추진한다. 이 영화에서 우리가 참고해야 할 사항은 ‘모형’이다. 일반적으로 모형(模型, model)이라고 하면 네 가지 다른 뜻 중의 하나로 쓰인다.

첫째는 ‘표준이 되고 모범적이다’ 는 뜻으로 ‘김 아무개는 우리 학교 학생의 모델이다.’는 것이다. 패션모델도 이와 비슷하다. 둘째는 복잡한 이론들을 설명하기 위해서 기호와 도표로 모형을 만들고 일의 작용과정을 보여주는 것이다. 셋째는 유흥·퇴폐업소가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이유를 생태학적인 관점에서 잔디밭(일반 시민사회)과 잡초(유흥업소)로 비유하면서 생태학적인 관점이 사회 환경의 모델이 되는 점이다. 즉, 잔디밭이 잘 되려면 잡초도 있어야 한다는 것을 유흥업소의 모델로 삼는 것이다. 끝으로 영화에서처럼 실제의 크기를 일정 비율로 축소한 비행기 모형, 자동차 모형, 기차 모형들이다. 이런 뜻의 모형이 원래의 모형이다. 이 모형이 지금 정부의 조직개편에서 꼭 참고해야 할 사항이다.

요즈음에는 축소모형을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개발하여 사용한다. 일컬어 시뮬레이션이다. 축소모형 시뮬레이션은 실물로 실험할 비용을 절감하며, 실물의 실패(시행착오)를 예방하는 아주 중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다. 조선(造船)설계 연구소에서는 모형을 만들어 실제 바다에서 파도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실험해본다(수조실험). 그러고서 이상이 없을 때에야 실제 배를 건조하기 시작한다. 지금 새 정부조직 개편안이 여러 가지 떠오르고 있다. 전문가 집단에서 그야말로 탁상공론 할 것이 아니라 정부조직개편 모형을 만들어 예비 실험을 해보아야 한다. 그래야 현재의 잘 못 만들어진 커다란 배를 수리하여 바다에 띠울 수 있다.

앞의 영화가 남긴 인상적인 지휘관의 지혜를 이경숙 인수위원장이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이 정부가 정부조직 개편안을 모형으로 만들어 실험해보고 세계의 자랑거리가 되기를 바란다. 더욱이 공무원 수를 줄여 작은 정부로 가려다가 이상한 눈치 보기를 하여 ‘기능(機能)’을 최대한으로 하겠다는 데에는 꼭 필요한 일이다. 미국의 정치학 박사과정에 나오는 ‘시뮬레이션’은 이경숙 위원장에게 낯익은 용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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