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기독교가 공인된 후에 중세 유럽에선 목욕을 방탕의 근원으로 여겨 금기시 하는 경향마저 있었다.
실제로 스페인의 이사벨라 여왕은 일생에 딱 두 번(태어났을 때 와 결혼하기 전) 목욕한 것을 자랑 할 정도였다. 당연히 그녀의 감지 않은 머릿속엔 벌레가 우글거렸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 선조들의 목욕에 대한 개념은 서구 세계와는 좀 다른 점이 있었다. 즉, 청결 개념보다는 의식적인 측면이 강했다고 할 수 있다. 제사를 지내거나, 명절을 맞을 때 ‘목욕 재개’ 하던 습속은 그런 흔적이다.
요즘은 목욕이 휴식차원으로 변모해 버렸지만 “목욕을 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것을 준비하는 마음가짐임은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데 목욕하는 과정과 방법을 살피면 우리네 삶과 흡사한 점이 많다. 우선 맨 몸으로 탕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동일하고 동등하게 인생을 시작함을 상징하는 것 같다. 그래서 가끔씩 “발가벗은 채 얘기하자”는 어귀를 쓰는 지도 모른다.
어릴 적 대중탕에 가서 냉탕, 온탕을 번갈아 들락거렸던 적이 있었다. 냇물에서 첨벙대던 정도의 ‘멱감기’ 보단 물도 깨끗하고 재미있어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놀곤 했었다.
제대로 몸을 씻지 않아 때는 불어나 있고 차라리 목욕을 안한 것만 못하다는 사실이 밝혀 질 쯤엔 어머니에게 혼쭐이 나고 있는 순간이었다.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가 좌충우돌 하다가 일을 어중간한 상태로 망쳐 놓은 것과 비교하면 될 성싶다.
몸을 씻어 낼 때 사용하는 ‘도구’도 중요하다.
손이나 세면수건으론 별로 도움이 안 된다. 한 때는 자그맣고 매끈한 돌을 사용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피부에 상처를 주기 쉬웠다. 역시 적당한 ‘값’을 치르고 구입한 ‘때 수건’이 제격이다. 위정자가 국민을 통치 할 때, 부모가 자식을 교육시킬 때, ‘돌’을 사용하면 깊은 상처를 상대에게 남기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목욕탕 문화에 방해되는 두 존재가 있다.
하나는 몸에 문신을 새겨 다른 사람에게 위협적인 분위기를 조장하는 측과 온탕과 냉탕을 번갈아 가며 멋대로 첨벙거려 주위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탕 모서리에 정강이를 찧거나 머릿기름을 얼굴에 잘못 발라 다시 씻는 법석을 떠는 쪽이 대부분 이 부류다.
누구도 혼자서 때를 씻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등이다. 이 부분은 반드시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려야 하고 받은 만큼 보답해야하는 희한한 상호 호혜의 원칙이 적용되는 곳이다.
목욕이 끝 날 무렵 대부분 거치는 과정이 전신 샤워다. 적당한 온도의 물로 전체를 깨끗이 씻어 줌으로써 목욕 중 소진했던 힘을 재충전하고 가벼워진 몸의 느낌을 즐기는 과정이다.
해악을 제거한 사회로부터 느끼는 분위기가 마지막 샤워와 흡사하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