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문화를 전시하는 ‘박물관인’의 보람
지역문화를 전시하는 ‘박물관인’의 보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11 2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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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도 박물관이 여러개 생기면서 지역 역사문화를 다각도로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추게 됐다. 그런 덕택에 박물관 소속원들도 지역사의 중요한 주제를 전시 기획해 시민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됐다. 10년 전까지만 해도 울산에 박물관이 없었다. 2005년 울산대학교박물관과 장생포 고래박물관(제2호)을 시작으로 울산대곡박물관(제3호)이 등록됐고, 최근에는 외솔기념관이 제9호로 등록됐다. 우리 도시를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낄 수 있다.

필자는 지금 대곡박물관에 근무하고 있지만 10년 전 박물관 사업의 최초 기획 단계부터 개관에 이르기까지 실무자로 일했다. 울산의 박물관 시대를 여는데 작은 힘을 보탰다는 자부심도 갖고 있다.

지금까지 기획한 전시 가운데 개인적으로 각별하게 생각하는 것이 있다. 지난 2012년 7월 제30회 런던올림픽을 앞두고 1948년 런던올림픽에 우리나라 정부 수립 이전에 출전한 사실과 축구에서 8강까지 진출했고 대회 첫 번째 골을 넣은 선수가 울산 출신의 최성곤(崔聖坤, 1922~1951)이었다는 사실에 흥미를 가졌다. 그래서 런던올림픽 기간에 맞춰 1948년 올림픽 출전 역사와 잊혀진 스포츠 영웅을 조명해 보고 싶었다.

그런데 최 선수 집에는 자료가 없었고 최 선수가 다녔던 학교에도 자료가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전시회를 포기해야 하는 게 아닌지를 고민했다. 그러나 나라가 없던 시기에 축구로 설움을 씻고 동포의 가슴을 후련하게 해준 그 분을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기념할 수 있을지를 생각하며 전시 개최를 위해 힘을 쏟았다. 다행히 최 선수가 1940년 7월 오사카에서 제22회 전 일본 중등학교 축구대회를 우승하고 찍은 단체 사진과 간송 전형필 선생이 보성 축구부와 찍은 사진, 대학 학적부, 런던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제출한 이력서와 증명사진, 그리고 런던올림픽에 관한 이미지 자료들을 구할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2012년 7월 26일 멕시코와 경기를 벌이는 날에 맞춰 ‘축구선수 최성곤과 1948년 런던올림픽’ 전시를 개막했다. 전시는 성공적이었다. 한 달 동안 3만명 넘게 관람했다. 더욱이 홍명보 감독의 올림픽팀이 동메달을 획득했기에 더 뜻 깊은 전시회가 됐다.

최성곤 선수는 울산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성고보에 입학해 축구 선수로 이름을 날렸다. 최 선수 재학시절에 보성고보의 우승 기록이 많았는데 1940년에는 5개 대회에서 우승했다. 최 선수는 그 뒤 보성전문학교(현 고려대) 법과를 졸업하고 광복 후에는 조선전업 소속 선수로 활약했다. 그는 ‘그라운드의 표범’·‘아시아의 준족’으로 불렸다. 그러다 1948년 제14회 런던올림픽에 축구 대표로 선발돼, 멕시코와의 첫 경기에서 첫번째 골을 넣어 5대3으로 승리해 8강 진출을 이끌었다.

최 선수는 1951년 12월에 29세의 젊은 나이로 안타깝게 타계했는데 묘소도 없다. 다만 아들에 대한 애끓는 모정을 지녔던 그의 어머니와 친구 김태근 선생이 1984년 세운 영모비가 있다. 그런데 이 비석에 적힌 최 선수의 약력에 착오가 보여 안타까웠다.

브라질 월드컵을 맞아 최성곤 선수에 대한 생각이 더 난다. 잊혀진 체육인을 조금이나마 드러낼 수 있었다는데 대해서 지금도 작은 보람으로 생각하고 있다. 차범근 해설위원도 10여년 전에 최성곤 선수를 기념해야 한다는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최성곤과 같은 선배 체육인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8회 연속 월드컵에 진출하는 영광이 있는 것이리라!

오늘도 ‘박물관인’은 새로운 자료를 찾으며 무엇을 전시할 지 고민한다. 더 좋은 ‘전시 밥상’을 차려 시민과 늘 소통하는 박물관인이 되고 싶다. 브라질에 출전한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을 기원한다.

<신형석 울산대곡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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