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지된 사랑(9)
1. 금지된 사랑(9)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11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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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고 싱싱한 젊은 남자의 몸 아래서 희열하는 여자를 생각할 때 진수라니 태자는 더욱 치가 떨렸다. 처음 하한기 필모구라의 말을 들었을 땐 그것이 사실이 아니기를 바랐지만 이제 그것은 하나하나 변명할 수 없는 사실로 드러나고 있는 것으로 같았다.

젊은 남자에게 몸을 맡기고 그 남자의 목을 휘감고 있는 비의 모습이 눈에 어른거렸다. 자신의 품속에서 가쁘게 몰아쉬던 그 신음소리를 젊은 남자의 품속에서 토하고 있는 비의 모습이 떠오는 순간 태자는 벽에 자신의 머리를 부딪고 두 손으로 머리를 쥐어뜯었다.

숨소리 하나하나가 생생히 재현되어 귀에 들렸다. 지난 수많은 밤 자신의 품안에서 늘 그러했던 것처럼 주체할 수 없다는 듯 신음을 토하며 온몸으로 교태를 부리던 비의 모습이 젊은 남자의 몸 위에 겹쳐졌다.

그리고 그것은 다시 비의 가슴을 어루만지고 있는 그 남자의 손길이 마침내 허연 허벅지 사이를 더듬고 있는 광경으로 이어졌다. 그 광경은 마치 눈앞에서 벌어지듯 생생했다. 그것이 단지 자신의 헛된 생각일 거라고 자위해 보지만 그럴수록 더 생생히 자신을 짓눌렀다.

빼앗긴 여자는 이렇게 아름다운가. 낯선 남자의 품에 있는 여자는 이렇게 아쉽게 느껴지는가. 쓸쓸했다. 전장에서 패배하고 돌아서는 장수보다 더 처참하고 외로웠다. 잃어버린 영토는 다시 찾을 수 있지만 잃어버린 여자는 다시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삭풍이 휘몰아치는 백척간두에 홀로선 것처럼 외로웠다. 여자가 없는 방은 왜 이리 크고 허전한가. 금은보화로 가득 채워진 이 침실이 왜 이리 텅 빈 것 같을까.

진수라니 태자는 두 남녀가 한 몸이 되어 희열하는 그 소리를 환청처럼 들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분명 그럴 것 같았다. 필모구라는 이번 일을 처리하는 데 주도권을 가지고 왕과 태자인 자신을 압박하는 절호의 기회로 이용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필모구라는 이번 사건을 문제화하면서 때로는 과장하기도 하고 때로는 오도하기도 하면서 자신의 주장대로 정국을 움직여 가려하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진수라니 태자는 자신이 조정의 실권자인 하한기 필모구라와 맞설 수 있는 처지가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비가 종자들을 궁성의 내실로 불러들이고 서라벌이 왕실과 내응한 흔적이 있는데도 그것은 비의 저지른 일이라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마치 같은 손의 손바닥은 내 것이고 손등은 내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나 다를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필모구라 하한기의 주장대로 태자비를 죽여야 할 것인가? 서라벌의 종자들도 죽이고 비도 모두 죽여야만 할 것이냐? 신라에서 온 종자들을 죽인다면 미증유의 참변을 몰고 올 것은 아닐까? 가라왕의 노여움도 그렇지만 서라벌이 그냥 있을 리가 만무하다. 신라의 국왕은 기개가 넘치는 법흥왕이 아닌가.

그들을 죽여 신라와 전쟁을 하자는 말인가? 가라의 이뇌왕은 또 어떤가. 신라왕의 부마로서 연맹의 소국에 고루 나누어 보낸 종자들의 목을 벤다면 또 어떻게 되겠는가?’

태자는 혼자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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