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성, 융통성, 다양성
일관성, 융통성, 다양성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7.15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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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속담, 경구(警句)의 몇 가지는 서로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초지일관하라는 충고는 ‘갈대는 휘어지지 부러지지 않는다’와 충돌한다. 대기만성은 ‘기회는 한 번 오지 두 번 오지 않는다.’와 양립하기 어렵다. ‘될 성 부른 나무,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왕후장상에 씨가 있느냐?’와 부딪친다.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는 ‘올라가지 못할 나무, 쳐다보지도 마라’와 충돌한다.

일관성(一貫性)은 하나의 성질이 계속 유지되는 상태이다. 문제해결을 위해 처음에 과학적 방법(하나의 성질)을 썼으면 끝까지 과학적 방법을 써야 일관성이 있는 방법이다. 만약 중간에 종교적 입장을 취해 신(神)을 찾으면 문제해결에 일관성이 없어서 혼란에 빠진다. ‘온도가 올라가면 부피가 늘어난다’는 성질이 시간과 장소에 관계없이 지켜지면 일관성이 있는 것이다. 부피를 Y대로, 온도를 X대로 하여 그래프로 그려 부피와 온도가 만나는 점들을 이었을 때, 직선이 된다. 이것을 두고 직선적인 성질, 앞으로 있을 일까지도 예측할 수 있는 관계가 성립된다. ‘직선적이다’는 일관성이 있기 때문에 부피가 줄어들지 늘어날지를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가장 어울리는 우리들 일상생활의 일관성은 한 사람의 정직성이다. 정직성은 일관성의 좋은 본보기이다. 믿을만한 사람, 신용할만한 사람은 우선 정직한 사람이다. 정직하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서 여러 가지를 예측할 수 있다. 예측이 가능한 사람은 믿을만한 사람이다.

신용불량자, 특히 금융신용불량자는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래서 은행에서 신용카드를 발급해주지 않는다. 당연히 신용불량자가 된 사유와 변명이 따르지만 정직하지 못했던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 북한이 국제적 신용불량국가이다. 즉, 예측할 수 없는 나라이다. 이런 나라를 믿고 민족이라고 품어 안으려는 미숙한 집단이 있어 김일성 시절부터 걱정이었다. 이제는 다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어서 그 후손들이 불쌍할 뿐이다. 대표적으로 이현상이 김일성을 믿고 민족을 외치다가 비명에 갔다.

일관성에 대비되는 말이 융통성(融通性)이다. 나쁘게 말하면 변덕(變德)을 부리는 것이고, 좋게 말하면 전략적인 행동이다. 현실적인 행동이다. 그러다보니 변덕쟁이가 되고, 변덕이 심하면 남들이 약속을 안 한다.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특정 종교 집단의 의식에 참여하던 사람이 외국에 나가 그 나라만의 특정 종교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좋게 말해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다. 융통성은 전략적인 성질을 갖고 있다. 공격과 수비에서 상황에 맞게 변화 시켜야 하는 전략에는 기본으로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교회의 장로가 국정 책임자가 되면 종교적으로 융통성이 있어야 한다. 일관성을 고집하면 부러질 수도 있다.

융통성을 포함하는 태도가 다양성이다. 바로 민주주의 국가 이념은 다양성의 수용이다. 다양성을 일관성과 대비시키면 처음에 제시했던 충돌이 생긴다. 서로가 개인임을 존중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각자의 자율성을 믿어주어야 하고, 당연히 자율에 따른 결과에 책임을 질 것이다는 믿음이 뒤따르고, 나의 태도에 일관성을 주장하면 남의 태도에서도 일관성이 있어야 함을 수용하는 것이다. 필연적으로 다양해지는 것이다. 우리 국민은 다양한 민족이 되고, 따라서 다양한 종교가 받아들여지고, 다양한 사상이 주장될 수 있다. 다만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강요하지 않는 범위에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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