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등처럼
비상등처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08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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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가 끝나고 당락이 모두 가려졌다. 선택을 받은 이도 아쉽게 떨어진 이들도 이젠 모두 한숨을 돌릴 게다. 전자는 안도의 한숨을, 후자는 회한의 한숨을 돌리고 있을지 모른다. 또 승리와 패배의 원인을 두고 누구는 다짐을 하고 누구는 분석을 할지도 모를 일이다. 지역의 일꾼이 된 이들의 감사 인사로 잠시 밖이 술렁인다. 당선 인사를 하는 이의 목소리가 꽤 힘차다. 거리엔 아직도 후보를 알리는 현수막이 많이 남았다. 무관심하게 봤던 약속들이 더 눈에 띄는 건 왜일까.

햇살이 아직 남은 오후, 예고된 시간이 되자 전기가 끊겼다. 요즘 통 울리지 않는 집 전화기의 본체가 삐릭, 신음 소리를 내듯 꺼졌고, 본체와 연결된 무선 전화기도 덩달아 멈췄다. 하루 종일 돌아가던 냉장고 모터소리도 사라졌다.

전기가 사라지니 집안이 고요하다. 소리를 쏟던 텔레비전도 한 순간에 조용해진 그때, 거실 벽이 순간적으로 밝아진다. 저절로 눈길이 빛을 쫓는다. 평소에는 잘 눈에 띄지도 않는 등! 우리 집에 아예 작동 스위치도 없는 등, 이른 바 비상등이다.

햇살이 남은 오후, 비상등의 빛은 반경이 좁다. 어둠을 밝히기보단 희미한 빛을 머금고 제 자리를 지킬 따름이다. 상황이 어찌 되었건, 굳이 깜깜한 밤이 아니더라도 그저 묵묵히 제 할 일을 하는 비상등을 보면서 언젠가 읽은 미국의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이라는 단편소설이 떠오른다.

소설은 아이의 생일에 맞춰 케이크를 주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생일날 아이는 예기치 못하게 뺑소니를 당한다. 부모는 아이에게 전적으로 매달린다. 전화가 걸려온 건 그 무렵부터다. 깊은 밤에 걸려오는 전화는 부부에게 공포가 되기도 하고 분노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결국 아이는 병원에서 실없이 죽는다.

그때 또다시 전화가 온다. 그것도 죽은 아이를 들먹이는 전화! 상대방을 기억해낸 엄마는 다짜고짜 쇼핑센터로 달린다. 전화를 건 이는 다름 아닌 케이크 상점의 주인. 케이크를 찾아가지 않는 손님에게 전화질을 하던 상점주인은 아이의 죽음에 얽힌 자초지종을 들은 후 진심으로 사과한다. 더불어 초췌한 그들에게 의자와 커피, 갓 구워낸 빵을 권한다. 먹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라면서 말이다. 소설의 제목처럼 부부는 동이 틀 때까지 움직이지 않고 그의 호의를 받는다. 아이의 죽음으로 거의 먹지 못하던 부부는 비로소 그의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배려로 삶을 꾸려갈 기운을 되찾는다.

거실을 온전히 밝히지 못했지만 비상등은 전기가 들어올 때까지 내내 제 깜냥만큼 빛났다. 욕심을 부리지도 억지를 쓰지 않은 채 말이다.

지역의 참 일꾼이 되는 일은 어쩌면 비상등이 되는 일일지도 모른다. 평상시엔 전혀 존재감을 드러내진 않지만 필요할 때는 언제나 맡은 바 책임을 다 하는, 결코 무리하지 않고 딱 필요한 만큼만 빛을 내는 비상등 말이다.

당선이 되기 위해 혹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많은 약속이 일방적으로(?) 펼쳐졌다. 임기 동안 약속한 일을 다 이루면 더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생길 것이다. 불가능한 일을 억지로 밀어붙이다 보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는 법이다. 그러니 통계적인 커다란 성과보다는 실질적으로 ‘사소하지만 도움이 되는’ 공약부터 이행하길 바란다. 하지만 실천을 중히 생각하는, 약속을 지키는 당선자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그것만이 이번 선거에서 균형을 이루지 못한 우리 지역을 지키는 일이리라.

<박기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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