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2화 가족들 이야기(3)
제22화 가족들 이야기(3)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7.15 2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5형제 각자 사물함 있어 물건 섞일 일 없어 방학 때가 되어야 객지서 우르르 몰려와
대답은 간단했다. 다정다감했던 큰 형은 동생들에게 전혀 위엄을 보이지 않았다. 누나는 아주 얌전한 모범생 소녀였다. 동생들 뒤치다꺼리는 물론이고 어머니를 도와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당시로서는 드물게 울산에서 부산의 경남여고까지 진학하였다. 울산에는 여학교가 없었기 때문이다.

동강 선생 5형제는 양말 찾아 먼저 신기 시합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계획에 의해 5형제가 각각의 군대식 사물함이 있어서 이곳에 자기 물건들을 항상 정리, 정돈하도록 되어있었기 때문에 서로 섞일 일이 없었다. 장남인 동강 선생이 동생들을 자질구레한 일로 가르칠 필요가 없었다. 더구나 중학교로 진학할 때쯤에는 서로가 헤어져 살게 되어 이런 일로 형제들이 경쟁하거나 다툴 일이 없었다. 방학 때가 되어야 객지에서 우르르 몰려와 집안이 5형제들로 꽉 찼었다.

형제들이 어려서 사물함을 어떻게 쓰느냐가 장차 어른이 되어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잘 나타났다. 아버지께서 과자를 사와서 형제들에게 골고루 나누어주면 각자 자기 사물함에 과자를 보관해 두고 먹었다. 언젠가는 홍시를 받아서 각자 사물함에 보관해두었는데 장남인 동강선생은 홍시를 먹지 않고 아끼다가 그만 썩어버렸던 일이 있었다. 절약하는 태도가 이런 것에서부터 나타났다. 둘째는 금방 먹어버리는 편이었다.

셋째는 제일 큰형만큼 아끼는 편이었다. 넷째가 둘째처럼 바로 먹어버리는 편이었다. 막내는 나이 차이가 많아서 어머니가 챙겨주는 편이었다. 형제들이 너무 착해서 형이라고 동생들 것을 살살 얼러서 뺏어 먹는 일이 없었다. 그저 각자 아끼다가 나중에 사물함에서 곰팡이가 피거나 말라버리는 일이 있었을 뿐이었다. 학용품, 놀이기구 등등이 사물함에 보관되어 있었는데 장남 동강선생의 사물함이 항상 말끔했었다. 이런 생활태도가 문학소년, 문학청년의 사색형(思索型)으로 나타났었다. 뒤에 이야기할 이면지를 메모지로 활용하는 습관도 여기에서 시작된 것이다.

동강 선생이 의과대학 재학 중에 결혼하여 서울 살림을 시작하였는데 여기에는 맏며느리(김영언), 셋째 박영대님의 기억에는 큰 형수의 적극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큰 형수님은 익숙지 않은 서울 살림에 잘 적응하셨다. 경북 의성의 시골 새댁이 6·25 전란까지 잘 이겨내셨다. 학생 남편을 도와 가난하지만 독립적인 생활 태도를 보이셨다. 이런 힘은 바로 형수님이 경북여고를 졸업했고, 결혼 전에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셨기 때문이다.

신여성이었기에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한다.(박영대님의 이야기 중에서)’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