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금지된 사랑(5)
1. 금지된 사랑(5)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6.05 2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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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패주 왕은 이미 왕으로서의 위엄과 체면이 바닥에 떨어진 처지에서 해야 할 마땅한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다만 필모구라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이제 그들을 죽여야 합니다. 종자들을 먼저 죽이고 태자비도 당연히 죽여야 합니다.”

필모구라는 저돌적으로 파고드는 투사와도 같았다.

“그들을 죽일 수는 없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제 그 말은 그만 하라. 연맹의 맹주국인 가라(대가야) 이뇌왕의 보낸 종자를 과인이 처형할 수는 없다. 그들을 처형한다면 가라국뿐만 아니라 서라벌에서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 불을 보듯 명확한데, 내가 어찌 그들을 처형할 수 있단 말인가?”

“우리가 그를 처형하지 않아도 서라벌의 책동은 이미 여러 가지로 나타나지 않았사옵니다. 우리가 종들을 잡아 가두자 그를 구하러 온 서라벌의 자객들이 우리 궁성의 성벽을 넘어 흉한 짓을 하려 하였사옵니다. 다행이 성첩의 초병들이 그들을 잡아 지금 그들을 옥에 가두어 매달아 두었습니다.”

“그 자객들을 잡아 둔 것이 또한 신라와의 관계를 악화시키지나 않을까 염려되는 바이다. 비록 그들이 용서할 수 없는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너무 가혹하게 다루지는 말도록 하라. 작은 것을 벌하려다 더 큰 화를 불러들일 수도 있음을 어찌 경은 알지 못한단 말인가.”

왕의 말에 필모구라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대신들의 눈에는 그의 표정이 불충의 도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그의 말은 거침없이 쏟아졌다.

“이뇌왕의 혼인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가 설령 서라벌의 그 첩자들을 죽인다 한들 그들의 마각이 드러난 마당에 이뇌왕인들 어떻게 그들을 두둔하려 들 수 있겠사옵니까. 그것을 우리가 그들을 두려워하고 그늘 속으로 숨으려할 때 그들은 야욕은 더 고개를 들 것입니다. 그들을 죽이지 않으면 어느 백성이 나라의 율령을 따르려 하겠사옵니까.”

“그러나 그들의 처형은 아직 더 미루어 두라. 인근의 여러 나라와 가라국의 사정을 더 판단한 뒤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 것이다.”

“이미 궁성을 드나드는 신라의 첩자들이 그 소식을 서라벌에 전한 것이 분명한 일이온데 그들의 처형을 늦추게 되면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도 어떤 책동을 도모하게 될지 알지 못합니다. 주저하지 마시고 그들을 처형하여 그 피를 옥전의 선왕들의 무덤 앞에 뿌리고 그들의 몸은 달밤에 무태산성 밖에 버려 늑대의 무리들의 먹이가 되게 하소서. 그것만이 이 땅에 나라를 세우고, 지켜온 우리의 선왕들에 대한 보답이 될 것이며 저 모주산 아래 만백성들을 하나로 모으는 힘이 될 것이옵니다.”

하한기 필모구라는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이미 왕은 노쇠했고 필모구라는 마흔을 갓 넘긴 패기 넘치는 나이였다. 그는 하한기로서 가지는 권한뿐만 아니라 그를 따르는 군장과 성주들을 거느리고 있었다. 수천의 병사를 이끌고 수많은 전쟁에서 뼈가 굵은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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