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과 여름철 보양식
한국인과 여름철 보양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7.14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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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 초복을 시작으로 한 달 계속 삼복(三伏)이 이어진다. 양력과 달리 절기(節氣) 만큼은 음력이 기가 차게 맞아 떨어진다. 복(伏)이 끝나지 않았음에도 아침, 저녁으로 가을을 느끼게 하는 것이 입추(立秋)인데 말복(末伏)보다 앞서 들어오는 것만 봐도 그렇다.

말복보다 입추를 먼저 넣어 더위를 잊고자 하는 선조들의 지혜만큼 복(伏)중에 먹었던 음식도 다양했다. 삼복더위에 먹는 보양식을 꼽으라면 보신탕을 먼저 떠 올리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예전에는 떡과 만두도 빚어 먹었다. ‘골무떡’이라 하여 흰 떡가래를 골무처럼 둥글게 잘라 ‘콩고물’에 버무린 뒤 차가운 꿀에 적셔 먹었다. 주로 사대부, 양반 집안에서 애용하던 음식이다.

또 만두피 속에 쇠고기, 돼지고기, 닭고기, 호박 등을 넣고 찐 뒤 초장에 찍어 먹었는데 이 음식도 ‘행세께나 하는 집안’에서 즐기던 여름 보양식 중 하나였다.

예나 지금이나 서민들에게 대종을 이루는 복날 시식은 역시 보신탕이다. ‘복(伏)’자에 개’견(犬)’자가 혼합돼 있는 것을 보면 동양에선 삼복더위와 개(犬)가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 1988년 ‘88 서울 올림픽’이 개최되면서 혐오식품으로 낙인 찍혀 지금은 ‘영양탕’이란 별칭을 쓰기도 하지만 보신탕은 원래 ‘개장국’이라고 했다.

조선 순조(1859)때 홍석모가 쓴 ‘동국세시기’에 보면 개장국에 대한 설명이 자세히 나온다. ‘삶은 개고기가 완전히 흐물흐물해 질 때 까지 푹 삶아서 파를 듬뿍 넣고 다시 끓인다. 이때 닭고기나 죽순을 넣으면 개고기 특유의 냄새를 제거할 수 있다. 개장국에 후추를 쳐 흰밥을 넣고 말아 먹으며 땀을 흘리고 나면 더위를 쫓고 허기를 보충할 수 있다’

개고기는 한국인만 먹는 것이 아니다. 만주지방에서는 개고기가 일반적 시식 육류였다. 우리 조상들이 주요 의례, 의식에는 개고기를 사용치 않았던 것과 달리 청인(淸人)들은 결혼식, 제사에도 개고기를 내놨다.

우리 속어에 ‘만주 개장수’란 말이 나오는 것도 그런 단면을 보여 주는 일례다. 일제 강점기 시절 국내에서 생활이 어려웠던 한국인들이 만주로 건너 가 ‘개장사’로 부를 축척했던 적이 있었다. 그만큼 만주에선 개가 일반화 된 시식품이다. 88서울 올림픽 때부터 외국인에게 혐오감을 준다는 이유로 보신탕이 된서리를 맞게 되자 삼복더위 보양식으로 자리 잡은 것이 삼계탕과 설렁탕이다.

기실 삼계탕과 설렁탕은 가난한 우리 선조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소위 ‘먹고 살만한 집안’이 즐기던 음식이다. 삼계탕의 재원이 되는 닭과 설렁탕을 고아내는 소 뼈다귀는 ‘귀한 물건’이었기 때문이다. 삼계탕을 끓여내는 데도 전래습속의 특성이 보인다. 탕을 끓일 때 닭 속에 찹쌀, 인삼, 대추를 넣어 삶는데 인삼뿌리와 대추의 개수를 1, 3, 5, 7, 9 … 홀수에 맞춰 넣어야 보신이 된다고 믿었던 점이다. 짝수보다 홀수를 우선시 했던 선조들의 음양관(陰陽觀)을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보신탕, 삼계탕에 비하면 설렁탕은 훨씬 고급스런 보양식인 셈이다. 기원 자체가 ‘나라님이 제사’ 지낼 때 사용했던 음식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농사를 다스리는 신(神)인 신농(神農)에게 풍년을 비는 제사는 신라 때부터 있었다.

조선왕조에 들어와서 동대문 밖에 선농단(先農壇)을 짓고 선농제를 지냈다. ‘성종실록’에 보면 선농제에 관한 기록 일부가 남아있다. ‘살찐 희생의 소를 탕으로 만들어 널리 펴시니 사물이 성하게 일어나고 만복이 천하에 고루 펴질지니’라는 묘사가 그것이다.

선농제 때 희생됐던 소의 모든 부분을 삶아 그 제사에 참여했던 사람들과 평등하게 나눠 먹었던 음식이 지금은 여름철 보양식의 일종으로 애용되고 있는 것이다.

/ 정종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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