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가능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것”
“사업가능성은 충분하다
문제는 어떻게 살아남느냐 하는 것”
  • 정종식 기자
  • 승인 2014.05.13 2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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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영숙 중구 문화의 거리 로코코 갤러리 관장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돈도 안 된단다. 하지만 끝없이 도전하고, 발견하고, 파괴하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했다. 자신이 조건을 만들어야지 돈으로 사업하는 게 아니라는 말도 했다. 얼핏 들으면 마치 기업인 방담(放談)가운데 일부 같다. 하긴 화랑(갤러리) 운영도 일종의 사업이니까 기업인 속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그의 얼굴에서 아직 피로감이 채 가시지 않았다. 전날밤 억수로 퍼붓는 비속을 뚫고 서울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지난 7일부터 11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개최된 ‘서울 오픈 아트 페어(SOAF)’에 다녀온 배영숙(50·사진) 관장을 만났다. 그는 현재 중구 문화의 거리에서 로코코 갤러리를 운영하고 있다.

“경비 절약을 위해 하루만 호텔에서 묵고 나머지는 찜질방에서 잤습니다” 아트페어 한번 참석하는데 평균 1천만원 이상 든다는게 그의 설명이다. 화랑(갤러리)운영자들이 다른 지역 작품전에 참가할 때 참가 작가들로부터 참가비를 받는 대신 작품을 전시해 준다. 참가비로 대개 100만원 정도 받는다. 이번 서울 아트페어에는 지역 작가 5명이 출품했다. 그들로부터 받은 500만원을 제외하면 나머지 비용은 몽땅 배 관장의 자(自)부담이다. 이렇게 비용손실이 나니 지방 갤러리들이 서울이나 외국에서 개최되는 전시회(아트페어)에 참가하길 꺼릴 수밖에 없다. 그나마 이번 전시회에서 배 관장 본인 작품과 지역작가 작품 2점이 팔려 손실 폭을 조금 줄였다. 이렇게 손실을 보면서도 그가 국내외 아트페어에 참가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이번 아트 페어에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서울 갤러리 관장들은 ‘한동안 경영이 어렵더라도 참는다’고 해요. 한 번의 기회를 노린다는 이야기죠” 그러면서 그는 서울의 문화수준이 우리보다 10~15년 정도 앞서 있다고 했다. 이번 아트페어에 갔더니 아이들 교육을 위해 부모들이 직접 자식들을 데리고 오더란다. 수천만원 짜리 작품이 팔리는 걸 보고 이 분야 사업 가능성도 확인했다. “살아남으면 언젠가는 빛을 본다는 확신을 가졌습니다. 이 계통에서 장기간 이름을 알려야 최고 작품을 만날 수 있거든요. 이왈종, 천경자 작가 같은 1% 이내 작가 작품은 한 점에 수천만원을 호가 합니다” 그는 또 “서울은 벌써 선진국 수준이예요. 우리만 뒤쳐져 있죠. 이번에 가보니 서울쪽은 작품 구매욕이 대단합디다”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10월 홍콩 메리어트 호텔에서 열린 아트페어에도 참석했다. 그 쪽도 갤러리 활황 수준은 우리보다 십 수년 앞서 간다고 한다. “어떻게 홍보했는지 관람객이 초만원을 이뤘어요. 전시회 덕택에 호텔 방이 몽땅 예약됐을 정도였어요. 정말 부럽더라고요” 배 관장은 그들의 홍보전략에 연신 탄복했다. 서울의 유명 갤러리도 그렇지만 홍콩 쪽은 기획전을 하기 전에 선전광고를 ‘퍼 붓는다’고 했다.

배 관장은 다음달 초 울산 현대호텔에서 열리는 ‘컨템퍼러리(contemporary) 아트 페어’에 많은 관심을 보인다. “서울에서 1%의 가능성을 보고 내려오는 거죠. 전국 소비 1위 도시인만큼 가능성이 있다고 본 것입니다. 홍보전을 펼치면 울산에서도 수천만원 짜리 작품이 팔릴 가능성은 충분할 것입니다” 지역 갤러리 운영자로써 썩 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만 문화 불모지에 씨를 뿌리는 역할은 충분히 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또 이 이야기를 하면서 지역 기업인들에 대한 섭섭함도 드러냈다. 지역에서 전시회를 하면 체면치레로 들러 몇백만원 짜리 작품을 구입하는게 고작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와 아트페어를 한다면 반응이 달라져요. 다음달 아트페어 결과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아마 수천만원 짜리 작품을 구입하는 사람이 울산에서 나올 겁니다. 기업인들은 예술의 힘을 잘 압니다” 이번 아트페어 때문에 현대호텔 객실 예약이 거의 끝났다면서 배관장이 한 말이다.

 

▲ 중구 문화의 거리에 위치한 '로코코 갤러리'.

로코코 갤러리는 중구 문화의 거리 뒷골목 한 쪽에 있다. 갤러리하면 으레 연상하는 것과는 사뭇 다른 규모다. 실내가 그리 넓지 않다. 하지만 이곳은 강소(强小) 갤러리다. 2012년 11월 개관한 이래 초대 작가전을 벌써 25여회에나 가졌다. 초대전 비용은 갤러리 운영자가 모두 부담한다. 알림 팸플릿, 작품 배치, 다과 등에 비용이 적지 않게 들어간다. 이런 부담 때문에 일부 갤러리들은 아예 문을 닫았다가 전시회가 있을 때만 대관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다른 곳에서 벌어 이 적자폭을 메운다. 그래서 개관이래 한번도 문을 닫아 놓은 적이 없다. “지자체나 기업이 운영비를 지원해 줘야 합니다. 개인이 운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들어오는 돈은 없는데 일정 비용은 꼬박꼬박 나가야 하니 견뎌낼 재간이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지역 작가들의 경제적 어려움도 털어놨다. “지역에서 수십년 동안 활동하신 분들이 전시회를 하면서 관람객에게 음료, 다과도 제대로 못 내놓을 정돕니다. 외부에서 지원해 이들에게 힘을 실어줘야 합니다” 국내외 전시회에 작품을 자주 내 놔야 외부에 알려지고 작품이 팔리는데 참가비 내고 출품하는 건 고사하고 지역 전시회에서 작가 본인이 기본적 비용도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어려우니 어떻게 지역 갤러리들이 살아남겠냐고 반문했다.

기자가 초대전을 할 때 가장 어려운 점이 뭐냐고 묻자 그는 ‘무관심’이라고 했다. 아무리 좋은 작품을 전시해도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이 없는게 가장 ‘괴롭다’고 했다. 지금 그의 갤러리에선 이수옥 서예가 초대전이 열리고 있다. “현대 서양화보다 우리의 뿌리인 서예가 훨씬 깊이 있고 무게 있습니다. 저 자신도 서양화 작가지만 이번에 서예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했습니다. 돈을 투자해서라도 이런 분들의 작품전은 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우리가 지금까지 이러 무형의 가치를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며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했다.

인터뷰 말미에 “어려운 갤러리 운영을 왜 고집하느냐”고 묻자 배 관장은 이렇게 대답했다. “인생은 하나의 여정이다. 누가 알아주고 돈 된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곁에 공기, 바람이 있듯이 그렇게 운영해 가는 것이다. 만나는 사람을 위해 전시해주고, 차 한잔 하며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 보람”이라고 했다. 또 “지금은 어렵지만 무한정 밀고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글= 정종식 기자·사진=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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