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1화 가족들 이야기(2)
제21화 가족들 이야기(2)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7.13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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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글씨체 친구들이 감탄할 정도 할머니의 앙칼진 목소리 온 집안 넘쳐나

넷째는 박영학, 부산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세무서에 근무하였는데 조금 일찍 돌아가셨다.

막내, 다섯째는 박영언, 당시 울산에 고등학교라고는 하나밖에 없는 울산농고를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경영학 공부를 마치고 지금은 델타(Delta)항공사에 근무하고 있다.

동강선생이 그토록 그리워하고, 셋째 박영대님도 목이 메어 말을 이어가지 못하던 어머니 김복순 여사는 당시 여자로서는 흔치 않은 소학교 공부를 마쳤다.

그래서 동강선생이 잠들기 전에는 책을 읽어주셨고, 박영대님이 부산 경남 중·고등학교에서 공부할 때에는 편지를 자주 보내셨다. 어머니의 글씨체가 어찌나 명필이었던지 주위 경남중학교 친구들이 감탄할 정도였다. 편지의 내용 또한 구구절절이 자식의 올바른 태도를 기르기 위한 성현들의 가르침을 인용하였고 편지의 구성이 마치 문학작품을 읽는 것 같았다. 집안의 여러 가지 대소사에서도 이렇게 깨어나신 분임을 보여주었다. 동강선생의 어머니에 대한 회고;

‘… 여러 일로 할머니는 항상 화가 나 있었다. 사소한 일에도 신경질을 부리며 아랫사람들을 쥐 잡듯 다그치기 일쑤였다. 매일 같이 할머니의 앙칼진 목소리가 온 집안에 넘쳐났기 때문에 (동강선생의)아버지와 어머니는 숨소리조차 크게 못 내고 사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할머니의 히스테리는 당연한 것이었고, 항상 집안 분위기가 무거웠다. 공직에 몸담고 계시던 아버지께서는 아침이면 출근하셔서 밤이 깊어야 귀가했기에 진종일 시어머니, 시할머니까지 모시며 어른들의 비위를 맞추는 것은 오로지 어머니의 몫이었으니 그 고통이 얼마나 컸을지 충분히 짐작된다.’

옛날에는 사람의 성격을 가늠하려고 할 때 그 사람의 글씨체를 보고 책임감이 강한가 적은가를 따졌고, 배신할 사람인지 아닌지를 예견하기도 했다. 대개 펜글씨나 연필 글씨의 필체(경필체 硬筆體)가 리듬이 있으면 원만한 성격, 글씨의 끝 획수가 힘이 없이 빠져버리면 마음에 변덕이 많고 약한 사람 등등이었는데 다 부질없는 예측이었다.

그러나 초등학교에서는 지나치리만큼 철저하게 경필자세를 연습시켰다. 짐작컨대 김복순 여사는 경필 쓰기 대회에서 수차례 우수상을 받았을 것이다.

평범하게 농사짓는 집의 다섯 형제가 세 살 터울로 한 집에서 살다보면 아침에 밥 먹기부터 저녁에 잠자리에 들기까지 경쟁하기 일쑤이다. 경쟁이야 아침에는 새 양말 먼저 신기, 저녁에는 좋은 요 먼저 차지하기이다. 밥상에서는 말할 나위 없이 하늘같은 아버지의 기침 한 번으로 맛있는 반찬의 배분부터 식사를 마치고 숟가락 놓기까지가 질서를 지키며 이루어지니까 별다른 문제가 없다. 박영대님에게 동강선생이 장남이니까 아버지 대신 이런 질서를 감시, 감독하지 않았느냐고 물었다. 누나는 옆에서 거들어주는 편에 속하지 않았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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