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CEO출신 대통령은 확률이 낮은 게임인 줄 알면서도 ‘다걸기(올인)게임’을 하는 것일까. 정치게임에서 그 확률이란 곧 여론의 향배인데 그것을 정말 모른다는 말인가. 필자가 보기에는 모르는 것이 아니라 승률 낮은 게임에서 보란 듯 이겨 보이겠다는 성공 향수에 젖은 기업형 정치인의 역시위 내지 과시적 리더십이 문제이다. 자칫 사소한 듯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문제는 참으로 심각한 근본적 사회 위기를 부르고 있다. 근대시민혁명 이후 수많은 피와 희생을 치르고 쟁취한 제도적 민주주의, 즉 대의제 민주주의가 심대한 도전에 휘청거린다는 것이다.
사이버 공간의 급속한 확대는 최근 세계 최첨단의 수준을 구가하는 우리 한국에서 새로운 정치문화를 낳고 있다. IT산업의 전략적 투자와 성장은 정치를 변화시켰다. 간접민주주의에서 직접민주주의로의 새로운 대안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그리스로마시대의 광장민주주의가 사이버공간에서 되살아 난 것 같다.
그러나 고대의 직접민주정치는 얼굴이 있는 철저한 책임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었다. 지금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새로운 정치적 의사표현 양식은 발언의 공간과 전파력이 큰 반면, 얼굴을 보이지 않는 익명성의 그늘에 숨겨진 부정적 요소도 크다. 그 부정적 요소의 가장 큰 문제는 책임을 수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록 직접적 주권 표시 방식이기는 하지만 수많은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현대사회에서 모두가 거리에 나가 자신의 목소리를 마음껏 낸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의회제도가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거리를 헤매고 있고, 국회는 선거가 끝난지 석달째를 넘기고 있지만 이제 겨우 늑장개원하여 허둥대고 있으니 늦은 아침밥 먹고 새벽장 가려는 형국이다. 이러고도 눈앞에 닥친 유가 150달러 파고를 어떻게 넘으려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도처에 문제를 제기하는 트러블메이커는 넘쳐나는데 어디에서도 해결자는 보이지 않고 있다.
초기 넉달을 지켜본 이명박 정권은 정책에서도 실패했고, 정무에도 실패하고 있다. 국민이 만들어준 압승정귄에 절대다수 여당이 어찌 이렇게 무기력 할 수가 있는가. 이제는 우리의 생각이 트러블메이커에서 문제해결자로 바뀌어야 한다.
문제해결의 실마리는 ‘입을 닫고 귀를 여는데’서 찾아야 한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에서 출발하며, 감춤이 없이 마음을 여는 데 있다. 정책의 실패는 부끄러워 할 일이 아니지만 정무의 실패는 두 번 다시 용인되지 못할 일이다. 또한 거리민주주의는 여론을 표출하고 정책에 투입하는 수단이어야지 결코 대의제 민주주의, 즉 의회민주주의의 대안이 될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