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선거판은 영원한 백년하청(百年河淸)
우리 선거판은 영원한 백년하청(百年河淸)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5.07 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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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름이 깊고 싱그러운 오월에 들었다. 인디언 아라파호 족들은 이 찬란한 생명의 달을 ‘오래 전에 죽은 자를 생각하는 달’이라고 한다. 생명의 시간에 고인을 추념한다는 그들의 생각에는 철학적이며 소중한 생명의 의미를 되돌아보게 하는 현명함이 깃들어 있다. 너무나 어이없는 까닭으로 오월의 푸름 같은 젊은 영혼들을 보내버린 우리에게 ‘꽃이 져도 마음 없는 시간은 지나가듯’ 우리의 일상은 지나가고 있다.

그렇듯 6·4 지방선거 일정도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선거판의 행태는 변한게 없다. 여야가 정당공천여부를 놓고 공방을 벌이더니 이제는 ‘하향식, 상향식’ 등 저들에게나 통용되는 용어를 써가며 후보자를 정하고 있다. 과거 공천과정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당비 헌납, 권력의 특정후보 밀어 주기, 지역성 조작과 같은 고질적인 병통이 말썽을 부렸었다. 특히 지방선거에서는 지역 당협 위원장이 공천권을 쥐고 자신의 맘에 들지 않는 후보자를 배제하는 대신 자신을 무조건 지지하는 함량미달의 후보자를 내기도 했다.

이런 ‘줄 세우기’를 규탄하는 민심에 굴복한 여야 정치권은 최근 공천권을 국민에게 돌려준다며 ‘상향식 공천’을 하겠노라 했다. 당원 일정비율과 유권자 여론조사 일정비율을 혼합한 방식이나 100% 유권자 여론조사로 지방선거에 출마할 정당후보자를 공천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와중에도 부정 불법 선거행태가 활개를 치고 있다. 공천을 관리하는 시·도당의 공천기준은 여전히 지역 당협 위원장 등의 의중에 따라 고무줄처럼 들쭉날쭉하고 있다. 국회의원의 특정후보 편들기를 의심해 전문 여론조사기관이 실시한 조사 결과조차 못 믿겠다며 불복,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강행하는 일이 속속 나타나고 있다. 또 여론조사와 당원투표를 병합해 후보를 확정하는 경우, 당원 지지율과 여론조사 결과가 서로 다르다며 트집을 잡는 사례도 한 둘이 아니다.

여론조사가 마치 만능해결사처럼 떠오른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불법으로 단기전화를 대량 설치하고 이를 착신장치에 연결해 여론 지지율을 조작하는 한 단계 진화된 신종 불법선거 수법까지 등장한 상태다. 발각이 되면 지지자가 자발적으로 저지른 것이라며 꼬리 자르기를 하고 관련후보자는 발뺌을 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이다. 그 수법이 이제 첨단 시스템을 이용하는 지능적이고 비열하기까지 한 추악한 범죄 수준에 이르렀다. 이러한 부정불법 백태는 대도시나 규모 작은 향촌 보다 오히려 중소도시 선거 과열지역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 지역 중소도시 선거는 전체 시민이 혈연, 지연, 학연 그리고 소지역주의에 서로 얽혀 있어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심리가 극대화 되고 있다. 보수적 중소도시에서는 사돈의 팔촌, 동문 등 온갖 층화된 갈등구조가 뿌리 깊게 자리 잡고 있고 지역정치가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하기 때문이다.

중앙·지방 정치권은 이런 심각성을 함께 인식하고 시급히 해결책을 마련해야 한다. 오로지 ‘나 하나 잘 살면 된다’는 생각과 행동이 이러한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암세포처럼 자라나 ‘세월호 사건’으로 번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다행히 울산지역 예비선거는 전국 어느 지역 보다 덜 혼탁하다. 갈등과 부정의 정치는 만가지 사회악의 암세포다. 세월호 침몰 후 우리사회 뒷면의 온갖 추악한 이면이 수면 위로 떠올랐으니 어느 강물에 그 더러워진 귀를 씻을까. 귀를 씻고 눈을 적신들 그 더러운 물을 차마 소에게라도 먹일 수 있으랴. 정치(政治)는 정치(正治)여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우리 정치선거판은 영원한 백년하청이다.

<박기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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