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
자비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5.0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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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은 한국에서 가장 역동적인 공업도시다. 그런 면과 달리 도시 주위에는 그야말로 황금알 같은 차분한 곳이 꽤 있다.

북쪽으로 한 30분 가면 신라시대 연회장소로 젊은 화랑들이 풍류를 즐기며 기상을 배우던 경주 ‘포석정’이 있고, 동쪽으로 30분 가면 아름다운 코발트색의 ‘정자’ 바다가 나온다. 또 남서 방향으로 30여분 내려가면 한국의 3대 사찰로 붓다의 진신사리를 모신 ‘통도사’도 나온다.

그 경내 도로 양옆에는 지금 알록달록한 연등이 바람에 흔들려 마치 봄날을 더욱 짙게 물들게 하는 것 같다. 안으로 조용히 들어서면 두개의 길을 만나는데 차량은 아스팔트길로 사람들은 우람한 소나무 숲속 보행로로 들어선다. 사찰을 둘러쌓고 있는 높은 산은 인도의 영취산을 닮았다 하여 이름을 영취산(靈鷲山)이라 지었는데 말 그대로 독수리(鷲) 날개모양을 하고 있다.

놀랍게도 통도사 경내에는 ‘암자’가 무려 20여개나 자리하고 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암자란 그저 산중턱에 있는 조그마한 절터로 생각하지만 이곳 암자 하나는 서울 조계사 크기만 하다. 그런 것이 20여개나 군데군데 산재하고 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중심에는 주 사찰이 있고 1시간 반 정도 힘들게 산으로 올라가면 깊은 산속 암자도 나온다.

또한 수 백개의 장독이 진열돼 있는 어느 암자에는 희귀한 야생화를 실컷 구경할 수 있다. 게다가 불심이 강한 사람의 눈에만 보인다는 금개구리(金蛙)를 직접 친견할 수 있는 신비한 암자도 있으니 더욱 묘한 기분이 든다.

또 이 영취산의 사계절 특히 봄날의 모습은 어떤가. 구름 뭉실뭉실 떠 있는 듯한 연두색 숲을 보면 초스피드 화가 밥로스(Bob Ross)의 풍경화와 다를 바 없다.

하물며 배가 고프면 아무 암자에나 들어가 공짜로 밥공양도 할 수 있다. 어느 누구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있으니 얼마나 좋은 일인가! 필자는 초파일이 되면 암자 몇 군데를 기꺼이 참배하는 습관이 있다. 그날만큼은 배불리 공양해 석가의 자비심을 듬뿍 받아보기 위해서다.

‘자비’란 말 그대로 자(慈)와 비(悲)가 합쳐진 말이다. ‘자’는 사랑하는 마음(愛念)을 가지고 중생에게 낙(樂)을 주는 것이고, ‘비’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愍念)을 가지고 중생의 고(苦)를 없애주는 사랑이다. 이것은 이기적인 탐욕을 벗어나 넓은 마음으로 질투심과 분노를 극복할 때에만 발휘될 수 있는 것이다.

모두들 잘 아는 ‘왕자와 거지’라는 소설이 있다. 미국의 대문호 마크 트웨인(Mark Twain·1835~1910)이 46세 때 발표한 작품이다. 12~13세기에 북유럽에서 전해오던 전설을 바탕으로 쓴 사회 풍자소설로 우리들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두 소년은 한 날 한 시에 태어났음에도 고귀한 왕자와 비천한 거지라는 전혀 다른 환경의 두 사람이 신분을 바꾸게 되며 온갖 사건이 벌어지는 내용이다.

만약 왕자 에드워드 6세가 거지인 톰 캔티가 되지 않았다면 서민들의 눈물, 아픔, 고통, 비참함을 알지 못한 채 나라를 통치했을 것이다. 반면 톰 캔티는 처음에는 양심에 찔려 왕자의 삶을 거부했지만 그 역시도 서서히 호화스러운 궁전 생활에 젖어 행렬에서 마주친 어머니를 모른다고 까지 했다. 만약 그에게 ‘선한’ 양심이 없었다면 진짜 왕자의 진실을 외면했을 것이다.

세상은 권력으로 사람을 이용하고 법을 악용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그 누구도 오래 그 자리에 앉아있을 수 없는 것이다. 그 자리를 떠날지라도 ‘자비와 선’을 베풀어 오랜기간 향기나는 아름다운 사람이 돼야 한다.

5월의 드높은 하늘과 싱그러운 만춘을 보면서 모든 이의 마음에 밝은 촛불이 환히 켜졌으면 한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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