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가는 언론자유
거꾸로 가는 언론자유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5.06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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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건강도를 높이고 국민 행복을 증진하는 데는 좋은 정치, 좋은 교육 못지않게 건강한 언론이 중요하다. 언론의 영향은 정치와 교육의 파급력에 전혀 뒤떨어지지 않으며 사회 어느 구석이든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언론은 횡(橫)으로는 국민의 상식이며 사회의 관행이고 교육·정치보다 한 단계 높은 가치이자 기능을 가진다. 종(縱)으로서는 과거역사를 통찰할 수 있게 하고 미래의 길을 개척하는데 든든한 길잡이 노릇을 한다. 언론이 살아있어야 정치, 교육이 바로 서고 국민의 행복이 높아진다는 의미다. 이러한 점 때문에 언론의 자유와 행태는 한 국가의 총체적 건강도를 측정하는 척도가 되기도 한다.

국제 언론감시단체 프리덤하우스는 지난주 발표한 ‘2014 언론자유 보고서’에서 올해 한국의 언론자유 순위를 작년보다 4계단 낮은 68위(32점)로 산정했다. 한국은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돼 2011년 상실했던 ‘언론자유국’ 지위를 되찾는 데 실패했다.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스웨덴이 나란히 10점으로 세계에서 가장 언론자유가 보장되는 나라로 꼽혔다. 벨기에와 핀란드가 11점, 이어 덴마크와 아이슬란드, 룩셈부르크, 스위스가 12점으로 공동 6위였다.

우리나라의 언론자유가 퇴행을 거듭하는 이유는 언론에 대한 올바른 철학이 없는 정부, 권위주의 정부의 잘못이 크다.

언론환경의 변화는 순전히 언론수용자에 의해 결정돼야 하는데 한국에서는 정부가 거의 결정하다시피 한다. 정부가 종편방송을 허가하고 종편의 신문사 지분율 등을 결정하고 재허가를 정부 입맛에 맞춰 결정한다. 정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는 언론의 영위가 보장되지 않는 환경이다.

MB정부 때 청와대는 통계청장을 수시로 불러들여 잦은 업무협의를 했고 정부에 불리한 국가통계 발표가 잇따라 누락·지연되기도 했다. 통계가 언론보도의 근거와 기준이 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통계통제는 보도통제다. 언론을 권력의 의도대로 춤추는 꼭두각시로 전락시켰다. 국가기관의 광고 배분을 통해 언론을 편가르기 시키고 순치시키려 했다. 국가권력만큼이나 힘이 강성해진 경제권력도 언론통제를 가속하고 있다.

이러한 언론의 대외적 환경변화에 대부분 언론계 내부도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권력 주변으로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는 형국이다. 언론의 기본기능이나 공적 사명 등은 잊은 지 오래다. 언론이 ‘생계형’으로 전락하면서 왜곡된 의제 설정과 정파적 보도를 일삼으며 자사 이익을 위한 권력을 추구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는 메아리조차 만들지 못하는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작년 말 “박근혜 대통령의 집권여당 새누리당과 국가정보원은 정치권에서 진보적인 목소리를 축출하기 위한 마녀사냥에 주력하고 있다”고 비판한 노암 촘스키(Noam Chomsky)와 ‘한·일 양국모두 정권의 폭주로 민주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고 세태의 흐름도 적신호’라고 직격탄을 날린 아사히신문은 있어도 현 정권을 제대로 비판하는 국내 언론이나 언론인은 없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 대해선 아직도 퍼주기니 대못이니 하면서 부관참시에 몰두해도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이명박 정권과 현 정부의 역행과 무능에 대해 신랄히 비판하는 언론은 제대로 없다.

언론이 공적 사명을 방기하고 있는 사이 온전하지 않는 국가권력·경제권력의 독주가 강화돼 인권 약화, 경제적 불균형 심화가 가속되고 있다. 바른 언론이 없으면 나라가 있어도 국민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는 점을 경각해야 한다.

<임상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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