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世上)의 눈
세상(世上)의 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29 2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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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은 다이너마이트라는 폭약을 발명해서 거부가 됐다. 이런 노벨이 전 재산을 모두 헌납해 노벨賞을 제정했는데 그 동기는 어처구니 없게도 한 신문 기사 때문이었다.

1888년 4월 어느 날, 알프레드 노벨은 우연히 프랑스의 한 신문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자신의 사망 기사가 실려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실제로 죽은 사람은 노벨의 형인 루드비히 노벨이었다. 그걸 프랑스 신문이 착각해 알프레드가 죽었다는 엉터리 기사를 내보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신문 기사가 오보라는 사실이 아니었다. ‘다이너마이트를 발명한 죽음의 상인 알프레드 노벨 사망하다’라는 신문 헤드라인이었다. 노벨은 자신을 ‘죽음의 상인’이라고 지칭한데 대해 쇼크에 가까운 충격을 받았다.

평소 노벨은 산업용으로 발명한 다이너마이트의 파괴력이 워낙 끔찍하기 에 앞으로 감히 아무도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 자신을 세상 사람들이 ‘죽음의 상인’으로 여기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 발명품이 산업용을 넘어서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전쟁 무기였단 말인가? 그것을 팔아 부자가 된 나는 ‘죽음의 상인’일 수밖에…” 여기서 회한에 찬 깨달음을 얻은 노벨은 “인류의 문학, 과학, 경제, 화학, 의학, 평화에 기여한 사람에게 나의 전 재산을 상금으로 수여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내가 나를 보는 눈과 세상이 나를 보는 눈은 이처럼 엄청나게 다를 수가 있다. 신문의 엉터리 사망 기사가 없었다면 노벨은 ‘죽음의 상인’이라는 꼬리표를 찬 채 무덤에 들어갔을 것이다.

역사상 한 획을 그은 군왕(君王)은 세상의 눈이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를 항상 살폈다. 국리민복을 위한 정치로 지금도 추앙되고 있는 세종대왕과 위대한 정복자 칭기즈칸도 그랬다. 세종대왕은 붓으로 문민통치를 했고 칭기즈칸은 칼로 무력 정복통치를 했다.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두 왕의 성공적 통치 이념이 의외로 닮은 점이 있었다는 사실에 역사학자들은 감탄하고 있다. 두 왕은 세상의 눈을 살피는 데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세종대왕은 왕을 바라보는 백성의 눈에서 왕에게 무엇을 바라는지를, 신하의 눈에서 왕이 어떤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읽어 내는 데 성공했기에 태평성대의 문민정치를 펼칠 수 있었다.

칭기즈칸은 오직 정복을 통해 쓰러지는 ‘도미노’의 쾌감을 느끼는 양 보였지만 정복한 국가에서는 즉시 칼을 거두고 그 나라의 관료, 포로, 백성들이 공포에 떨며 정복자를 바라보는 눈을 두려워하면서 살피고 또 살펴 단시일에 그 공포를 사라지게 하는 맑은 샘물 같은 정책을 베풀었다. 그래서 정복한 국가 백성들의 지지를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왕을 바라보는 세상의 눈에서 왕이 어떤 정치를 해야 한다는 것을 통치 이념으로 삼았다는 사실에 두 왕의 위대한 정치 철학을 볼 수 있다.

사람은 권력을 쥐거나 큰 돈을 모으면 자칫 세상의 눈을 살피지 않기 쉽다. 그들은 세평(世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만해지기 때문이다. 때로는 남이 뭐라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말겠다는 오기까지 부린다. 그런 사람들은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세상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 세상은 나 홀로가 아니라 너와 우리로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를 보는 세상의 눈은 너의 눈, 우리의 눈, 정의와 법(法)의 눈인 것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는 삶이 진정 밝은 사회를 이룩할 세상의 정직한 눈이다. 또 공복(公僕)이 주인의 눈을 무시하는 세상보다, 주인의 눈을 두려워하는 세상이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일 것이다.

<이영조 상이군경회 중구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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