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기구두의 추억’
‘메기구두의 추억’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7.12.10 2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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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살
    ▲ 본지 정종식 논설위원
그 당시 중학교에 갓 입학한 여학생 대부분은 그런 구두를 신었었다. 합성수지나 인조 가죽으로 만든 것인데 앞부분이 메기주둥이 같이 넓적한 검정색이었다.

좀 더 오래 신게 할 요량으로 큰 것을 고르는 엄마와 딱 맞는 신발을 사려고 하는 딸이 신경전을 벌이던 물건이기도 했다. 70,80년대 중학교를 다녔던 지금 40,50대 주부들은 대부분 기억하리라.

요즘 애들은 그런 검정색 학생화 쯤은 거들떠보려고도 하지 않겠거니와 재래식 시장 한 모퉁이가 아니면 찾아보기도 힘든 물건이다.

그런데 며칠 전 우연히 그 ‘메기주둥이 검정색 구두’를 봤다. 소설가 박완서 씨가 마루턱에 걸터앉아 찍은 사진이 모 일간지에 실려 있었는데 그녀가 신고 있었다. 접힌 부분이 터 갈라져서 가죽속의 흰색이 약간 보이는 모습. 바로 그 메기주둥이 구두였다. 그 작가가 형편이 어려워 그런 구두를 사 신었을 리는 없고…, 빛바랜 기억 속에서 그 검정색 여학생 구두가 필자를 잠시 상념에 젖게 했다.

겨울로 접어드는 이맘때가 우리 어릴 적 교실 안이 가장 썰렁한 시기였다.

연기가 눈물을 쏟게 하는 ‘솔방울 난로’를 피우기엔 이르고 그냥 있기엔 몸이 떨리는 계절이었다.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기침소리는 교실 안을 더욱 을씨년스럽게 만들곤 했다.

필자의 어린 시절 학동들이 주로 신던 고무신은 두 종류가 있었다. 검정색으로 질이 좀 떨어지는 싼 것이 있었고 약간 비싼 소위 ‘왕자표’ 고무신이 있었다.

당시 가정이 어려웠던 친구들 대다수가 검정색 고무신을 신었는데 신발 옆구리가 터지면 흰 실로 꿰매 신곤 했었다.

양말이 귀한 시절이라 흰 실로 무늬를 새긴 검정 고무신만 덜렁 신고 등교하는 친구들은 점심시간이 되면 슬그머니 교실을 빠져 나가곤 했다.

아무 말 없이 눈을 껌뻑이며 교실 추녀 밑 양지 바른 곳에 앉아 있다가 점심시간이 끝나면 소리 없이 들어오던 그 친구들. 지금 생각하면 점심 도시락을 챙겨 오지 못할 정도로 그들은 가난했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 아이들은 순수했고 예절 바르고 인내심이 있었다.

얼마 전 고향 선배님의 딸 결혼식에 갔다가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났다.

서른한 살 먹었다는 아들을 동반하고 있었는데 맑고 잔잔한 젊은이였다. 그런데 이 청년이 양복을 입지 않고 평상복 차림으로 결혼식장에 왔기에 의아해서 친구에게 물었다. 친구 결혼식장에 갈 때 당사자인 신랑, 신부보다 더 멋을 내는 요즘 세태를 내심 못 마땅하게 여겨왔던 필자로선 당연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편하게 입고자 하는 본인의 뜻도 있지만 지금껏 양복을 한 벌도 사주지 않았다.”는 것이 그 친구의 대답이었다.

양복을 사주지 않은 것이 교육적 목적 때문인지 경제적 이유에서 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 청년이 평상복 차림에 신은 운동화는 분명 ‘타이어 보다 비싼 신발’은 아니었다.

군 복무를 마친 뒤 다니던 대학을 그만두고 다른 대학의 수의학과에 입학해 늦깎이 대학1년생이 됐다는 그 젊은이. 양복을 입지 않고 구두를 신지 않았어도 담담할 수 있는 그 청년이 수십 년간 망각 속에 묻어 뒀던 우리의 가난한 옛날을 생각하게 했다.

한 해가 저무는 이 겨울, 박완서의 구두와 그 젊은이가 신었던 운동화가 새삼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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