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일자리 찾아 이국땅으로 떠난 우리처럼
외국인 입장 이해하는 마음 필요해”
“과거, 일자리 찾아 이국땅으로 떠난 우리처럼
외국인 입장 이해하는 마음 필요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0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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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재호 울산 출입국관리사무소 소장
“외국 국적인들에게 나라의 발전상을 보여 줄 수 있다는 게 자랑스럽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리가 일자리를 찾아 밖으로 나갔잖습니까. 하지만 어려운 점도 한두가지가 아닙니다. 현재 울산사무소는 약 3만명의 외국인을 관리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직원이 부족해요” 그러면서 장생포 항만분소에 나가 있는 직원이 2명이란 사실을 아쉬워했다. 그는 1977년 인천 출입국 관리소에서 9급 공채로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법무부 출입국 관리직 1회 출신이다. 2012년 서기관으로 승진했다. 안정된 인상만큼이나 한걸음씩 올라 온 셈이다. 유재호(57·사진) 울산 출입국관리사무소 소장 이야기다.

“한국 남성들이 외국인 신부들을 더 많이 이해해야 합니다. 다른 나라에서 온 신부들이 무조건 순종적이고 가정적이기만 바라는데 그런 환상은 버리는 게 좋습니다” 유 소장은 국내로 들어오는 외국인 신부들 상당수가 고향에 있는 가족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그런데 입국해 결혼했더니 남편이 그만한 경제력이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신부들이 잠적하거나 이혼을 신청해 가정이 깨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신부들은 어떻게든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보탬이 돼야 하는데 실제 상황이 그렇지 못해 취업에 나선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 남편은 살림이나 하고 아이들이나 기르면서 가정에 머물길 바라니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폭력, 가출, 이혼이 발생한다는 게 유 소장의 설명이다.

이런 폐단을 막기 위해 최근 국적법이 대폭 강화됐다. 이전에는 한국인과 결혼하는 외국여성은 자동적으로 국적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위장결혼 등 문제점이 발생하자 비자발급과 국적 취득 기준을 대폭 강화시켰다고 한다. 지금은 국내에 거주하면서 혼인상태를 2년 이상 지속해야 국적신청 자격이 주어진다. 신부를 국내로 데려오는 것도, 국적법을 취득하는 과정도 더 까다롭게 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래서 요즘은 국내인들이 외국인 신부와 결혼하려면 본인의 실질 소득을 증명해야 한다. 또 신부는 한국어 능력을 일정 수준 갖추고 있어야 한다. 이런 조건들을 갖추지 못하면 재외공관에서 사증(비자)발급을 하지 않는다.

울산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지난해 사회통합·국제결혼안내·해피스타트·동포 기초법제도안내 프로그램을 실시했다. 사회통합프로그램은 국내에 체류하는 외국인들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한국어와 한국사회를 가르치는 과정이다. 체류인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말이 안 통해’ 갈등과 오해가 빚어지는 경우가 가장 많았기 때문이다. 또 우리 풍습과 제도를 제대로 몰라 충돌을 빚는 일이 잦다고 한다.

국제결혼 안내프로그램은 대부분 한국 남성을 대상으로 한다. 국제결혼을 원하는 내국인을 대상으로 현지 국가의 문화 등을 소개하고 결혼사증 발급절차나 심사기준 등을 안내하는 프로그램이다. 그리고 처음 입국한 결혼이민자들에게 국내정착에 필요한 법·제도 등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해피스타트 프로그램이다. 또 문화와 제도 차이로 빚어지는 사회갈등이나 범죄 예방을 위해 외국국적 동포에게 우리의 기초법·제도를 안내하는 게 동포기초법·제도 안내프로그램이다. 울산 출입국관리사무소는 지난 한해 이 프로그램들을 통해 1천440명을 교육시켜 내 보냈다.

울산 출입국관리사무소는 2011년 12월 출장소에서 사무소로 승격될 당시(1만8천422명)에 비해 지난해 말 기준 등록외국인이 61%(2만9천637명)나 증가했다. 관할 구역도 경주시가 추가된 상태다. 업무영역도 기존 업무 외에 일반행정, 사회통합, 난민, 자체 단속 및 보호, 강제퇴거집행 등이 더 불어났다. 하지만 그동안 업무담당 인력은 거의 증원되지 않았다. 같은 광역시 규모인 대전에 30여명의 인력이 배치돼 있는 것에 비하면 울산은 3분의 2수준인 20여명에 불과하다. 그러다보니 외국인 관련 업무를 처리하려는 민원인들이 평균 3~4시간씩 대기해야 한다. 그 뿐만 아니다. 등록 외국인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불법체류자, 불법취업 등 출입국사범도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현장단속을 세세히 하기엔 울산 출입국관리사무소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다. 유 소장은 급선무로 ‘인원 증원’을 꼽는다. “유입되는 외국인이 늘어나면서 울산 야음동, 경주 외동 지역에 외국인 밀집 지역이 형성됐습니다. 한곳에 모여 살다보면 자연스레 범죄나 불법행위가 생기기 마련입니다. 이런 곳에 직원들이 직접 나가 단속, 계도를 펼쳐야 하는 데 지금 인원으론 역부족입니다” 유 소장은 경주지역에 신규 출장소 신설을 올해 상부에 건의할 것이라고 한다. 만일 울산 사무소에 인력이 증원되면 경주지역 이동출입국 사무소 운영을 검토하겠다고도 했다. 경주에 거주하고 있는 외국인이 민원업무를 보려면 대중교통으로 왕복에만 4시간 정도 소요된다. 게다가 사무소에서 대기하는 시간이 3~4시간 걸리기 때문에 등록외국인들이 민원 1건을 처리하기 위해 하루를 소모해야 한다는 게 유 소장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런 어려운 여건 가운데서도 울산사무소는 외국인 인권보호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엄정한 법의 잣대에서 벗어나 ‘인간을 위한 행정’도 펼쳤다. 지난해 중국인 A씨는 과거 출입국위반 사실을 숨기기 위해 타인 명의로 입국한 사실이 뒤늦게 적발됐다. 그런데 현장을 방문해보니 한국인과 결혼해 행복하게 살고 있더란다. A씨를 강제 퇴거시킨 뒤 입국규제조치를 취하면 이들 부부는 생이별을 해야 할 판이었다. 그래서 울산 출입국관리사무소는 권익증진협의회에 이 문제를 상정해 출국명령 처분 후 재입국할 수 있도록 했다. 그들은 지금 울산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유 소장은 요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한 보호 장치도 다양하게 마련돼 있다고 설명했다. 불법체류자로 적발돼 강제 출국돼도 국내에 체불임금이 있으면 반드시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보장하고 전세금까지도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하는 것이 그 예다. “문제는 불법 체류입니다. 그 자체가 약점이거든요. 이런 불안한 처지를 이용해 한국인 업주들이 임금을 체불하거나 언어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모든 게 욕심 때문이라고 했다. 국내에서 한두달만 더 벌면 고국에 있는 가족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 때문에 그런 불법행위를 한다는 것이었다. “불법은 용인할 수 없지만 그들의 처지는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외국에 나가 있던 우리 근로자들 사이에서 가끔 일어났던 일 아닙니까” 그의 생활철학에 신앙이 깔려있음을 다시 느끼게 한 말이었다.

글·사진=정종식·김미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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