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한때
그러한 한때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08 2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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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벌 동쪽 끝으로
옛이야기 지줄대는 실개천이 회돌아 나가고,

얼룩백이 황소가 

해설피 금빛 게으른 울음을 우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빈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엷은 졸음에 겨운 늙으신 아버지가
짚베개를 돋아 고이시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중략)

바다에 춤추는 밤물결 같은
검은 귀밑머리 날리는 어린 누이와

아무렇지도 않고 예쁠 것도 없는
사철 발벗은 아내가
따가운 햇살을 등에 지고 이삭 줍던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하늘에는 성근 별
알 수도 없는 모래성으로 발을 옮기고,

서리 까마귀 우지짖고 지나가는 초라한 지붕,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 도란거리는 곳,

그 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지난 토요일 무거동 궁(弓)거랑 벚꽃축제, 50대 이상으로 구성된 태화강합창단이 부른 정지용의 시 향수(鄕愁)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에 복받쳐 울컥하고 올라온다.

노랫말 속 추억처럼 인생에 있어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어린시절이다. 좌충우돌하며 가장 재미나게 지내는 때는 청년기다. 아들 딸 키워가는 어른으로서는 또 어떤 행복이 있을까.

시나브로 피었다가 100일이나 지나서야 지는 배롱나무 꽃처럼 오랜 시간을 피는 꽃이 있다. 여기에 비해 벚은 너무나 눈부신 ‘한 방의 꽃’이어서 닷새를 버티지 못한다. 꽃 자신을 위한 시간은 365일 중 100일 이거나 5일이다. 엄밀히 따지면 이마저도 자신을 위한 시간이 아니다.

꽃이란 열매를 맺기 위함이고 결실은 곧 후대를 위한 행위가 아니던가. 부모됨이 이렇듯 험하고 당최 여유라고는 내주지 않는다. 어른들은 뒤돌아보며 살기 십상이다. 우리인생의 전모(全貌)가 이렇다.

‘내 경우라면 진짜 행복한 한때란 바로 다음과 같은 경우이다.

푹 잠을 자고 난 뒤 아침에 눈을 뜨고 새벽 공기를 마시면 폐가 충분히 부푼다. 그러면 마음껏 숨을 들이쉬고 싶어하는 가슴께의 피부나 근육에 유쾌한 운동의 감각이 일어난다. 따라서 일도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드는 한때.

맛있는 음식을 배불리 먹은 다음 안락의자에 기대어 앉는다. 함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마음에 꼭 드는 친구들뿐이다. 두서도 없는 정담이 끝없이 경쾌하게 계속된다. 몸도 마음도 천하태평인 그러한 한때.

어느 여름날, 한낮이 겨워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검은 구름이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인다. 15분쯤 지나면 초여름의 소나기가 틀림없이 퍼부을 것 같다. 비를 흠뻑 맞고 싶지만 우산도 받지 않은 채 빗속으로 나가는 것도 어쩐지 쑥스럽다. 그래서 얼른 밖으로 나가 들 한복판에서 소나기를 만난 것처럼 구실을 댄다. 이윽고 흠뻑 젖어서 돌아와 집안 식구들에게는 “허, 그만 비를 만났지, 뭐야”라고 말하는 그 한때.’

린위탕(林語堂)의 ‘생활의 발견’ 중 일부다.

“나에게 삶은 두 가지 밖에 없다. 기적이라곤 없다고 믿는 삶과 모든 게 기적이라고 믿는 삶이다.” 아인슈타인은 물질에 백기투항한 삶과 감성이 충만한 삶의 차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크고 작은 행복과 고통, 그리고 모든 순간과 흔적을 우리는 매일 이별하고 있다. 궁거랑에 연분홍 꽃잎이 무수한 작은 배처럼 떠내려간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난다.

<임상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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