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거칠어지고 있다
말이 거칠어지고 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4.01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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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춘을 즐기기도 전에 벌써 소란스런 선거의 계절이다. 민주주의의 꽃이자 축제가 돼야 할 선거지만 솔직히 선거철만 되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온다. 온갖 쓰레기 같은 소문과 귓전만 아프게 하는 소음, 어색하기 짝이 없는 후보자가 낀 율동부대는 정말 견디기 버겁다. 정말 이런 방식이 최선일까 또는 조용하고 차분하며 냉정하게 선거를 치룰 방법은 어디 없을까를 생각하게끔 한다.

선거철의 대표적 현상은 오고가는 말들이 거칠다는 점이다. 후보자간, 선거캠프 관계자간에 그렇고 때때로 지지후보가 다른 유권자나 이웃간에도 말이 거칠어지는 경우가 여느 때보다 많아진다. 거친 말과 막말, 원색적인 표현은 상대를 압도하는 대표적 방법이다.

돈은 묶고 입은 푼다는 취지의 공명선거법이 있긴 하지만 사실 선거만큼 무법·무례의 세계도 없다. 차별화 전략, 각인효과, 노이즈 마케팅과 이미지 조작, 별난 짓거리로 이목잡기 등등의 이름으로 법 취지를 훼손하는 수많은 불법과 편법이 동원된다.

축구선수는 공을 다룰 때 손을 써도 반칙이지만 경기와 관계없는 쓸데없는 고함이나 욕설, 상대방에 대한 시비의 말을 하면 역시 반칙이 된다. 선거판에서 입을 푼다고 하는 것은 각양각색의 공약을 후보자가 잘 설명하고 자신의 장점도 잘 도드라지게 하는 한편 분명한 근거와 함께 상대방의 거짓도 밝히는 말까지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취지다. 그런데도 많은 경우는 말의 책임과 제약까지도 없는 자유를 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

온갖 욕지거리, 불법도 마다않는 상대방 뒷조사와 약점 찾기, 흑색선전, 무책임한 폭로가 제약없이 구사된다. 마찬가지로 자신의 약점 숨기기, 비난거리 감추기, 위장된 ‘좋은 입소문 내기’도 주요전략으로 통한다. 이러한 일들이 수많은 대중 앞의 공개된 장소가 아니고 또 후보자가 직접 간여하지 않은 한 선관위로서도 반칙을 선언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더 정직하고 더 훌륭한 인품을 가진 이를 가려 뽑아야 할 선거가 덜 미덥고 덜 나쁜 사람을 골라 투표해야 할 판국이니 유권자에게는 피곤하고 짜증나는 선거가 된다. 우리의 현실이다.

선거판에서의 막말과 거친 말은 그래도 좀 낫다. 유권자의 심판이라는 최종 거름장치가 있어서다. 하지만 정치판에서의 이러한 행태는 보통일이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 땅의 국민들이 반세기 가까이 길들여져 온 알량한 안보논리에 편승해 상대를 종북세력으로 매도하는 막말이다. 분명한 근거도 없이 사람과 상대진영을 말 한 마디로 악한으로 규정해 버리는 것은 다른 모든 거친 말, 막말에 앞서는 최악의 일이다. 기본상식은 갖추고 있는 사람들인지 의구심이 든다.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달 중순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쓸데없는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라고 말했다. 또 5일 국무조정실 업무보고에서는 “한번 물면 살점이 완전히 뜯어져 나갈 때까지 진돗개 정신으로 업무를 추진하라”는 표현을 썼다. 관료사회의 지지부진한 규제 개혁에 답답해하는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는 할 수 있다. 끝장을 볼 각오로 일하라는 뜻이겠지만 살벌하고 부적절한 표현이다. 대통령에게 어울리는 격조 있는 표현도 아니다. 좋고 고운 말이 얼마든지 있다.

대통령의 표현 하나하나는 국민의 사기와 관계돼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대통령의 한숨과 탄식은 곧 국민의 절망으로 치환될 수 있는 것이다.

말은 습관이며 이력이다. 또 당사자의 인격이자 심상이다.

<임상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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