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타지가 필요해
판타지가 필요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30 2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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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인간은 죽는다. 이것만큼 참 명제가 또 있을까. 죽음 앞에서는 누구나가 공평한 것을. 어찌 보면 생로병사를 겪는 인생사 자체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한 것은 아닌가. 사람이란 게 원래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다가 흙으로, 다시 무로 돌아가니 말이다. 만약 인간이 태어나기만 하고 죽는 장치가 없다면 상상만 해도 소름이 돋는다. 결국 인간의 삶은 죽음의 굿판을 향해 나아가고 있을 뿐임을.

역설적으로 말하면 인간은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서 앞만 보고 달려가는 존재인지도 모른다.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는 방편은 여러 가지가 있을 터이다. 결혼을 해서 가족을 꾸리고 자신과 닮은 자식을 낳아 종족을 유지하거나 힘든 삶을 종교의 힘에 기대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은 이런 평범한 삶조차 꿈꾸기 어렵다. 직업을 가지고 노동을 하거나 가정을 만드는 일 따위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추세가 돼버렸다. 사람들은 현실이 녹록치 않으니 고통스런 문제를 피하거나 외면하려든다. 고달픈 현실에, 달라질 것 없는 일상에 판타지가 녹아드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 여긴다.

이미 영화나 드라마, 소설에 판타지가 없으면 사람들의 눈길을 끌지 못한다. 안방극장에는 예쁘고 잘생긴 배우들이 나와 먹고사는 문제는 안드로메다 별자리로 보내버린 드라마가 한동안 시청자들의 이목을 끌었다. 뱀파이어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400년 동안 지구에서 살고 있는 외계인 주인공 때문에 대한민국 여자들의 안구는 한껏 정화됐고 그녀들의 심금을 울렸다고 한다. 나의 그대는 별에서 왔을 거라는 환상을 깨기가 너무 아쉬웠던가. 때맞춰 하늘에서 떨어진 운석으로 세상이 시끌벅적하다. 운석은 우주에서 지구로 떨어진, 불타다 남은 우주의 흔적이라니 이보다 환상적이고 기막힌 타이밍이 또 어디 있을까.

외계인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와 함께 순간이동으로 날아간 곳은 한려수도를 품은 섬, 장사도였다. 드라마 속 그곳은 사방이 그림 같은 한려수도의 바다를 향해 열려 있고 동백꽃이 터널을 이룬 환상의 숲이 펼쳐졌는데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섬은 사람의 물결로 출렁거렸고 허락된 단 두 시간 안에 환상의 섬을 빛의 속도로 훑고 나와야 했다. 주인공 도민준과 천송이는 사진 속에 웃고 있을 뿐. 동백터널도, 별 그대도 봄 햇살아래 신기루였음이니.

또 다른 판타지는 경주의 박물관에서도 펼쳐졌다. 백화수피, 자작나무껍질로 만든 빛바랜 말다래의 속의 ‘천마’는 상상 그 너머에 존재하고 있었다. 말머리와 꼬리에 갈기를 세우고 혀를 길게 빼물고 있는 천마는 실제 말의 모습과 사뭇 달랐다. 이 천마도를 상상의 동물, 하루에 천리를 달린다는 말 기린이라고도 했다. 천마의 존재가 무엇이건 고작 나무껍질로 만든 말다래가 1천500년 동안 무덤 속에 존재하고, 하늘을 향해 달리는 동물을 그려 넣은 신라인의 기상을 어떤 무엇으로도 설명이 되지 않은 신비한 현상으로 여길 수밖에.

온 천지가 꽃 몸살로 무르익는 요즘, 성질 급한 동백이 눈 속에서 피기도하고 매화가 질 무렵이면 우아한 자태를 자랑하는 목련이 벙글고 개나리와 진달래가 앞서거니 뒷서거니 다투며 핀다. 봄꽃의 절정은 아마 벚꽃이 되겠다. 벚꽃엔딩으로 봄의 향연은 마무리 될 것이므로.

그런고로 판타지는 영화나 드라마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잠을 자고, 눈뜨는 평범한 아침이 어쩌면 삶을 여는 판타지의 시작일 듯. 무덤에서 수천 년 잠자고 있던 유물이 세상의 빛을 보고, 해마다 봄이 되면 잊지 않고 제 순서대로 꽃이 벙그는 것도 판타지의 다름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리하여 이 봄! 그대와 나, 아직 두 발을 땅에 딛고 살아있음이 최고의 블록버스터 판타지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박종임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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