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슬프게하는 신부들
우리를 슬프게하는 신부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27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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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뽑은 대통령을 향해 “대변보고 밑도 안 닦은 것처럼 냄새가 나 가까이 갈 수가 없다”, “지금 독일에서 냄새를 풍기고 다닐 것”이라고 했다. 박창신 신부라는 사람이 천박하게 내뱉은 말이다.

송년홍 신부라는 사람도 “박 대통령이 무엇이 무서운지 비행기 타고 독일로 도망갔다. 오늘은 박근혜라는 이름을 안 쓰겠다. 그냥 ‘걔’라고 부르겠다”고 했다. 문규현 신부라는 이는 “박 대통령은 더 이상 대한민국 대통령인 것처럼 착각하지 말고 국민 앞에 사과하고 물러가라”고 했다. 천주교 전주교구 정의구현 사제단 시국미사 현장에서 쏟아져 나온 말들이다. 이런 언행은 사제와는 거리가 먼 시정잡배나 종북좌파들의 것과 비슷하다.

정의구현 사제단소속 신부가 전국에 500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이 어떤 언행으로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가대사를 그르쳤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김승헌 신부가 정의구현 사제단 대표로 있을 때 김영삼·김대중 두 대통령후보가 대결을 펼쳤다. 김영삼 후보가 당선되자 그는 “이번 선거는 컴퓨터부정” 이라며 기자회견을 했다. 그래서 선관위가 야당과 시민단체 참관 하에 일일이 수작업으로 다시 검표를 했다. 결과는 컴퓨터 집계와 똑같았다. 그러나 그들은 한마디 공식적인 사과도 없이 어물쩍 넘어갔다. 봉화마을 ‘부엉이 바위’를 예수님의 부활동산에 비유한 신부도 있다. 이런 신앙관을 가진 신부 밑에서 무슨 성경을 배우고 있는지 궁금하다. 국가와 국민을 ‘바지저고리’로 보지 않았으면 이런 안하무인격인 행동을 했겠는가. 삐뚤어진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신부’라는 탈을 쓰고 번번이 나라를 혼란스럽게 하고 있다. 왜 국가는 이들을 이대로 방관하고 있는가. 종교인들은 무슨 치외법권에라도 속하는 사람들인가.

1950~60년대 남미에서는 군사독재가 국민들을 극심한 가난과 억압으로 몰아넣었다. 이때 구티에레즈 신부가 ‘해방신학’을 제창해 군부독재에 항거하는 민주화 운동을 폈다. 우리나라도 지난 60년대 군부독재시절 안병훈 목사, 김재준 목사 등이 중심이 돼 민주화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 해방신학은 신학이 아니라 정치적 종북이념에 얽매인 위장된 해방신학으로 변질됐다.

천주교 역시 민주화와 가난한 사람, 압제받는 사람을 위해 사회구조적인 ‘악’을 제거하는 것이 자신들의 의무라고 생각했다. 김수한 추기경은 이를 몸소 실천한 분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60년대 지학순 주교 등이 중심이 돼 정의구현 사제단이 태동됐다. 그리고 60년대 군부독재시절 민주화와 사회정의실현, 인권신장에 나름대로 많은 기여를 했고 국민들로부터 존경도 받았다.

그러나 시대를 지나며 초기의 순수함을 잃고 특정 이념과 특정정파에 편향하는 단체가 됐다. 불의와 부정을 혁파하는 하나님의 사도인양 자처하면서도 정작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선 언제나 침묵하거나 옹호했다. 급기야 평신도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대한민국수호 천주교모임’이 교황청에 이들을 탄핵하는 진정서를 올리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리고 염수정 추기경이 자제를 당부해도 귀를 틀어막은 채 비난까지 하는 ‘막가파’ 수준으로까지 전락했다.

지금은 군부독재시대가 아니다. 또 박근혜 대통령이 선거부정으로 당선됐다고 믿는 국민들은 거의 없다. 어떤 사람은 야당 후보보다 박 대통령이 당선된 걸 큰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그럼에도 그들은 오불관언 이를 되풀이 주장하는 미사를 올리고 있다.

오는 8월 교황이 우리나라를 방문을 해 평화미사를 올리는 뜻 깊은 자리에서 이들이 또 무슨 짓을 하고 어떤 해프닝을 벌일지 벌써부터 걱정스럽다.

<김용언 김 소아과원장·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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