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의 과거를 흉내 낼 것인가?
남미의 과거를 흉내 낼 것인가?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7.08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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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특정 종교의 외침, 가장 양심적인 사람들의 외침이라고 믿어서 나라 정치에 참여하여 콩 놓아라, 팥 놓아라. 하게 한 일이 있었다. 소설로 유명한 ‘삼총사(뒤마, Dumas)’에 아주 높은 지위의 종교인이 정치에 참여하여 나랏일을 그르치는 장면이 있다. 종교인이 권력 맛을 알고부터는 자꾸 더 큰 권력을 휘두르고자 온갖 비리를 저지르는 속성을 다룬 것이다. 프랑스의 일이다.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특정 종교의 교리가 바람직하다고 따르면서 처음에는 참고 조언의 수준(우리나라에서 어느 존경 받는 종교인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개인 재산 헌납을 국민에게 약속했으면 당장 약속을 지키라고 충고하는 수준)이었다가 자기 종교단체의 힘이 커지니까 이 힘을 바탕으로 권력행사 특히 돈에 관한 욕심을 부려 나라의 정치발전을 후퇴시키고 말은 일이 있다. 부패정권의 시작이었다.

우리나라 역사에도 종교와 정치가 섞여 있다가 나라 일을 그르친 일이 고려에서 잘 나타난다. 언젠가 어느 종교의 맹신도인 무식한 교수가 미신을 믿어서 그렇게 되었다고 하더니, 아인슈타인의 ‘종교는 유치한 미신이다’는 친구에게 보낸 편지 내용의 공개에 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실 그 교수의 개인적인 습성이 자기의 잘못된 일, 자기에게 불리한 증언에는 철저하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비도덕적인 면이 있지만, 대학의 교수라면 천재 물리학자의 양심선언에는 순수하게 자기 종교적 반성과 함께 고개를 숙일 줄도 알아야 한다. 바로 이 점이 종교가 정치판에 끼어들려고 해서는 안 되는 점이다. 그 교수는 학생들에게 간접적 선교활동을 하고 있어서 문제가 된다. 종교와 교육도 분리되어야 진정한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다.

종교의 자유는, 내가 어느 종교의 가르침을 따를 것인지 내가 선택하는 자유이지, 다른 사람에게 나의 종교를 따르라고 강요하는 자유가 아니다. 이것을 두고 횡포라고 한다. 특정 종교의 종교적 의식(儀式)을 식사할 때마다 0.5초 과시하는 사람이 대학의 학과에, 회사에 피해를 주고서도 종교의 자유를 주장할 것인가?

종교야말로 가장 개인적인 것이다. 영혼이 있다고 믿는 것도, 영혼은 없다고 믿는 것도 가장 개인적인 일이다. 정범모 교수(84세)는 ‘종교인이면서 비종교인 행동을 하는 사람이 있고, 비종교인이면서 종교인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데, 나더러 비종교인이면서 종교인 같다고 자기 종교를 믿으라고 하는데 딱 질색이다’고 종교의 자유를 행동으로 보인다.

나라 정치에도 그 많은 종교인들이 번갈아 가며 공공장소에서 누구(?)보라고 종교의식을 행하고 있다. 울산에서도 그런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 과학, 공업 발전의 상징인 울산은 마지막 자존심을 가져야 한다. 남들이 다 하고 난 뒤치다꺼리로 무슨 무슨 종교적 행사를 공공장소에서 치를 것인가? 정치는 정치하는 사람들끼리 공정하게 타협하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종교가 간섭하기 시작하면 제2의 남아메리카 나라들 모양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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