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규제·착한 규제 옥석은 가려야
나쁜 규제·착한 규제 옥석은 가려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26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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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겨울 대한민국은 사상초유의 국가위기를 맞았다. 흔히들 말하는 IMF사태다. 우리는 국가부도사태를 막기 위해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다. 그 결과 다수의 재벌이 해체되고 정부의 기업정책에도 변화가 생겼다. 당시 우리는 근본원인에 대해 성찰할 겨를도 없이 IMF가 조건부로 제시한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정책’을 수용해야 했다. 그 때부터 우리는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두 얼굴’에 대한 성찰적 비판은 뒤로 한 채, 대량해고 실업사태와 카드대란, 국경 없는 투기자본의 횡포를 초래한 ‘IMF 규제 완화정책’, ‘민영화 정책’,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비판 없이 받아들였다. 그 결과 카드빚에 의한 신용불량자, 해고규제 완화로 인해 넘쳐나는 실업자와 비정규직, 청년실업 등 ‘소수의 희생’은 국가 위기 극복이라는 대의 앞에서는 사소한 부작용으로 치부했던 경험이 있다.

그랬던 시장 중심의 신자유주의 자본주의가 2010년 ‘다보스포럼’에서부터 ‘균형 있고 포용적인 동반성장’을 강조하는 ‘서울 G20정상회담’ 그리고 UN의 ‘Post-MDGs’ 글로벌 개발담론에 이르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제 시장경제 자본주의의 결과물인 지구촌 빈곤과 양극화, 불평등 등에 대해 개혁의 목소리를 더 높이고 있다.

이명박 정부시절 기존 개도국 원조사업과 청년 사회적 기업 모델을 접목한 대안적 국제개발협력모델을 만들기 위해 필자가 태스크(task) 팀을 꾸린 적이 있다. 당시 정부부처 간의 협업을 이끌었던 필자를 가로막는 관료들과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했던 넋두리가 새삼 생각난다. “대한민국 공무원들은 ‘할 수 있는 이유’는 한가지도 대지 못하면서 ‘해서 안 되는 이유’는 5분안에 수십 가지를 말하네요. 선례가 없으며, 예산이 없다. 조례 및 법적 근거가 없다. 이런 식으로 하면 아무것도 못합니다”

쓸데없는 관료들의 몽니 부리기 규제, 손톱밑 가시규제, 일자리와 투자를 가로막는 나쁜 규제는 분명 혁파돼야 할 대상이다. 이번 기회에 암 덩어리 규제는 샅샅이 찾아내고 신속하게 재검토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지난주부터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이루어진 규제개혁 끝장토론 이후 옥석구분 없이 무차별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규제개혁’의 광풍을 보면서 필자는 만감이 교차한다. 분명 혁파돼야 할 ‘나쁜 규제’도 있지만 밀어붙이기식 규제개혁 신드롬 속에서 진정 지켜내야 할 ‘착한 규제’, ‘필수 규제’도 있다. 그런데 이런 양질의 규제가 악질의 규제에 휩쓸려 사라질까 염려된다. 안전규제, 환경규제, 노동자보호규제, 금융규제, 독과점규제, 산업규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주문한다.

지난주 생방송을 지켜보며 그런 우려들이 적나라하게 현실로 드러났다. 천송이 코트를 해외에 팔기 위한 액티브X 없는 공인인증서나 푸드트럭 사례 등의 덩어리 규제는 빠른 대처를 통해 개혁되는 것에 동의한다. 반면 청소년 생활세계 안전확보를 위한 학교 옆 호텔, 러브호텔 규제나 청소년 인터넷 중독 방지를 위한 인터넷 게임 셧다운제,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자동차 탄소부과세, 그린벨트, 친수공간,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규제, 수도권 과밀화 방지 규제, 자본주의 모순에 대응해 강화된 반독점 규제 강화, 금융규제, 사회보장법 제정, 부당노동행위제도 등은 그대로 존속돼야 한다.

규제의 현상과 이로 인한 기업활동의 위축을 받는 기업의 입장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약자보호, 더불어 살아가는 상생과 공공성 담보, 지속가능한 발전 등 규제를 만든 근본 취지와 함께 타협과 절충의 대상이 될 수 없는 원칙과 인류보편적인 가치 및 글로벌 규범 등에 대한 검토과정이 꼭 있어야 한다. 아울러 시장과 기업의 입장과 논리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모든 영역의 정책 수요자들의 의견 청취 특히 사회적 약자, 노동자, 골목상권과 재래시장 상인 등 서민의 입장에서도 철저히 재검토하는 합의과정도 놓쳐선 안될 중요한 과제다.

<송진호 울산YMCA 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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