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올림픽 골프단장으로 금메달 ‘싹쓸이’ 골프여생 마지막 목표”
“2016 올림픽 골프단장으로 금메달 ‘싹쓸이’ 골프여생 마지막 목표”
  • 정종식 기자
  • 승인 2014.03.25 2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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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창기 한국 여자프로골프협 경기위원장… 울산 골프 2세대에서 한국여성프로골프협 경기위원장까지
▲ 정창기 한국 여자프로골프협 경기위원장.

정창기(61·사진) 울산광역시 골프협회장이 지난달 21일 한국여성프로골프협회(KLPGA) 경기위원장에 선임된 사실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다. 박세리, 박인비 등 세계적인 여자 프로 골프 선수를 배출한 KLPGA에서 경기위원장이 차지하는 비중은 대단하다. 그가 발탁된 것은 골프규칙에 관한 한 그를 따라올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정 위원장은 세계적 권위를 자랑하는 영국 R&A(Royal & Ancient) 레프리스쿨 시험에서 2000년 국내 수석, 2004년에는 아태지역 수석합격을 차지했다

그는 31세 때(1983년) 처음 골프에 입문했다. 당시 울산 골프 인구는 수십명에 불과했다고 한다. 고(故) 고원준 전 상의회장을 비롯해 영초당 한약방 장남이었던 이상원 씨 등 10여명이 ‘골프 1세대’였고 박정국 현 동강병원 재단이사장, 김성호 현 울산체육회 부회장, 정 위원장 등이 그 뒤를 이어 2세대를 형성하고 있었다. “울산 CC는 아예 없었습니다. 그 때 회원들은 주로 경주(당시 조선)CC나 부산(당시 양산)CC를 이용했습니다. 그런데 선배들이 시합을 하다 안되면 이상한 규칙을 만들어 벌칙(페널티)을 주는 거예요. 저건 아니다 싶은 경우가 더러 있었지만 당시는 선배들 이야기가 곧 ‘법’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골프 규칙을 제대로 공부해 보기로 했단다. 하지만 80년대 초 우리나라에 골프규칙 책자가 없어 일본에서 관련 서적을 구해와 어렵사리 공부했다. 모르는 단어가 있으면 일어 사전을 찾아가며 밤새워 공부했다고 한다. “내 일생에서 그때만큼 열심히 공부했던 적은 아마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기억에 남습니다” 그는 그 당시 ‘열공(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그를 국내 최정상급 경기위원 반열에 올려놓는 밑거름이 됐다고 회상한다.

정 위원장은 전국체전에 울산골프를 등장시킨 산파역도 했다. 1997년 울산이 광역시로 승격되자 그해 10월 열리는 전국체전에 당장 울산이 단일팀으로 참가해야 할 판이었다. “전국 체전을 불과 2달 정도 앞두고 골프팀을 창단하라고 해요. 선수가 있습니까. 연습할 곳이 있습니까. 기가 차데요” 당시 심완구 시장으로부터 ‘전무이사 정창기에게 맡겨라’는 지시가 떨어져 그가 전국체전 골프팀 사령탑을 맡았다는 것이다. 당장 나설 사람이 없어 ‘골프 2세대’ 가운데 일부가 선수로 뛰었을 정도니 좋은 성적이 나왔을 리 만무하다. 그해 체전에서 골프종목에 울산은 최하위권인 14위를 했고 98년엔 아예 ‘꼴찌’를 했다. “1년 동안 시합이란 시합엔 선수들을 데리고 모조리 갔습니다. 정말 독을 품었죠. 그 때 길러낸 선수들이 나중에 전국을 주름 잡게 됩니다” 그 결과 99년 전국체전에서 울산 골프팀이 종합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2000년과 2001년 3위, 2002년 2위를 차지했다.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이동화(제일고), 김상호, 엄재진 (홍명고) 등이 바로 그들이다. 요즘 한창 잘 나가는 김대섭, 김성윤, 정성한 선수 등도 당시 선수들이었다. 2013년 국가 대표선수였던 정윤한 선수도 당시 고등학생이었다.

▲ 광저우 아세안 게임 금메달리스트들. 오른쪽부터 정창기 위원장, 김현수, 한정은, 김지희 선수.

하지만 정 위원장이 중앙무대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 영국 R&A 레프리 스쿨 시험에 국내 수석으로 합격하면서다. 그 시험에 합격하려면 500쪽에 달하는 규칙에 통달해야 한다. 그래서 골프계에선 이 시험을 ‘골프 고시’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법시험처럼 골프 법규집을 펴 놓고 시험을 본다. 알고 있는 골프 지식을 제대로 응용할 수 없으면 법규집은 있으나마나다. 이 시험에 합격한 뒤 그는 ‘2002년 부산 아시아 올림픽 경기’에서 오피셜(official) 레프리로 임명된다. 오피셜 레프리는 주위와 협의하지 않고 단독으로 벌칙(페널티)을 줄 수 있을 정도로 막강한 자리다. 국내 수석에 만족하지 못한 그는 2004년 다시 R&A 시험에 응시해 아태지역 수석을 차지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대한골프협회 경기위원, 2008년 대한골프협회 규칙위원회 부위원장을 거친 그는 지난달 한국여자프로 골프 경기 위원장에 선임됐다. 경기위원장으로 가기까지의 숨은 이야기도 재미있다. “KLPGA에서 KGA(대한골프 협회)에다 경기위원장을 한명 선임해달라고 부탁을 했던가 봐요. 하루는 허광수 KGA 회장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좀 해 주라는 거예요. 그때까지 내가 바쁘다며 사양했거든요” 지금까지 경기위원장을 시켜 달라며 모두 굽실거렸는데 정 위원장만 뻣뻣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KLPGA 측으로부터 ‘조건개선’ 허락을 받고 승낙했다. 승낙조건이 뭐냐고 묻자 ‘밝힐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일단 ‘파격적’이라며 웃었다. 계약기간도 정 위원장 의사를 최대한 반영했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박세리, 박인비 선수에게 열광만 할게 아니라 우리도 이 골프 선진국에 걸맞는 수준으로 가야 합니다. 골프 경기 도중 규칙에 문제가 생기면 ‘캐디에게 물어보자’고 해요. 말이 됩니까” 그래서 그는 경기위원장에 취임하면서 경기위원들을 모아 놓고 “올해 KLPGA에서 벌어지는 모든 룰 문제에 대해선 내가 책임지겠다. 소신껏 일하라”고 했다. 그래서 그의 올해 목표는 경기위원회 위상 제고다. 프로 선수에서 ‘퇴장’한 사람들이 일부 경기위원을 맡고 있기 때문에 프로 선수들이 경기위원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것을 바로잡겠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골프 후진국을 탈피하려면 골프 용어도 재정립해야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라운딩(roundlng)이라고 하는데 라운드(round)로 고쳐야 합니다. 골프장에서 쓰는 모자를 썬 캡(sun cap)이라고 해요. 이것도 잘못된 겁니다. 캡은 머리 윗부분이 막혀있는 겁니다. 뻥 뚫려있는데 그렇게 말하면 안 되죠” 그러면서 그는 골프용어 일부가 일제 잔재에서 비롯됐다고 했다. 모 은행이 홍보용 TV화면으로 ‘나는 싱글(single) 될꺼야’를 내보내자 홍보팀에 연락해 정정토록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다. “싱글은 ‘혼자 사는 사람’ 아닙니까. 무턱대고 사용하는 용어부터 고쳐야 선진화가 이뤄지는 겁니다”

그는 골프인생을 ‘2016년 브라질 리오데자내이루 올림픽’에서 마감하고 싶다고 했다. 정 위원장은 중국 광저우, 중동 도하 아세안 게임에서 개인·단체전을 통해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을 휩쓰는데 일익을 담당했다. 한정은·김지희·김현수(사진 왼쪽) 등이 광저우 아세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땄다. “미국 센트루이스 올림픽 이후 116년만에 브라질 올림픽에 골프가 주경기 종목으로 채택됐습니다. 이번에 프로 선수들도 출전할 수 있어 우리 여자 선수들이 금메달을 딸건 분명합니다. 몇 개냐가 문제죠” 그는 2016년 올림픽 골프단장으로 출전해 아세안 게임처럼 금메달을 휩쓰는게 그의 여생 마지막 목표라고 했다.

글=정종식/사진=정동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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