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조작혐의
‘국정원 간첩사건’ 증거조작혐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20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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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끝부터 매화 향, 산수유 꽃향기가 봄바람을 타고 북상하고 있다. 지난주 고향에 갔더니 갈아엎어 놓은 발아래 흙 감촉이 얼마나 부드러웠던지. 참으로 오랜만에 진한 향수를 마셨다. 세상 한 쪽은 이렇게 평화롭고 향기로운데 이내 눈을 돌리면 불안하고 한심하기 짝이 없는 꼴을 보게 된다.

근대국가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막강한 군대와 겉으로 보이지 않는 국가정보기관에 의해 지켜지고 유지돼 왔다. 그래서 오늘날 강대국들은 겉으로는 첨단 무기와 장비로 무장한 군대를 키우고 관리하며, 한편에서는 철저하게 훈련되고 정예화 된 국가정보기관을 갖추고 있다. 미국의 CIA나 영국의 M16, 이스라엘의 모사드, 러시아의 KGB 같은 정보기관이 그 한 예이다.

우리도 이미 오래전 중앙정보부를 창설하고 안보와 방첩활동의 주축으로 삼아 왔다. 그동안 중앙정보부는 나름 나라의 숨은 안보기관으로 제 역할을 다 했다. 하지만 심심찮게 제 기능을 넘은 외도와 일탈 행위를 해 비난과 반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나라의 위해요인을 제거하기 위한 활동이 아니라 제 스스로 불법적 음모를 꾸며 독재정권의 정적을 제어하는 하수인 역을 자처한 적이 적지 않았다.

이름을 국가안전기획부로 갈아 새 출발을 하는 듯 했어도 기회만 되면 ‘못된 짓’을 반복했다. ‘음지에서 일하며 양지를 지향한다’는 복무지침이 무색하고 민망한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난 시절 선거 때나 집권세력 위기 때마다 등장했던 ‘안풍’이니 ‘북풍’이니 하는 것도 알고 보면 국가정보기관이 그 뒤에 있었다.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서 남북분단이라는 이중적 위험을 관리해야 하는 국가 최고정보기관이 이렇게 외도하고 일탈하면 국민들이 무엇을 믿고 생업에 열중할 수 있겠는가.

최근 국가정보원이 하는 짓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지난 대선과정에서 거론된 ‘국정원 국내정치 개입 의혹’에 한술 더 떠 이제 국정원 직원이 ‘공무원 간첩사건’의 증거조작 혐의에까지 연루돼 수장과 수하가 동시에 재판을 받을 지경이 됐다.

재판정에서 보여진 정보기관 수뇌의 태도는 아무 한 일 없는 평민인 필자가 도리어 창피해 낯을 들 수 없을 정도였다. 저런 이를 믿고 한 동안이나마 나라의 안전을 책임지게 한 이 나라가 굴러가는 것이 참 용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진정 나라를 위한 일이었다면 당당하고 확실하게 자신의 주장을 펴 국민을 설득시켜야 한다. 행여 공공의 안위를 위해 업무를 수행하다 저지른 과오였다면 사실을 그대로 밝히고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법적 장치를 마련하며 정당한 법의 심판을 구함과 동시에 국민의 용서를 기다리는 것이 목숨을 담보로 나랏일을 하는 공인의 올 바른 태도일 것이다.

그런데 한결같이 모르쇠로 일관하며 묻으려 하는 태도는 음모와 부정의 정황을 더욱 확고히 하는 것이며 역사에 죄를 남기는 어리석은 짓이다. 게다가 대통령의 국정원 개혁의지도 지금은 유야무야한 상태다. 사정이 이러하니 아예 국정원을 없애버리자는 극단적인 견해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안될 말이다. 빈대 한 마리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빈대를 털어내고 대청소를 하면 된다. 정치개입, 간첩사건 증거조작 혐의, 국정원 수장, 수하 재판을 보는 심정이 답답하다.

<박기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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