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철폐만이 능사가 아니다
규제, 철폐만이 능사가 아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18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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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제는 법이고 사회상식의 결과이며 사회갈등의 해법이다.

규제란 법과 제도를 통칭하는 말이다. 법으로서 규제는 누구라도 수긍할 수 있도록 공정해야 한다. 제정취지와 방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법제도는 유력·이익단체에 의한 로비와 압력에 의해 언제든지 무뎌질 수 있다. 항상 공정함과 애초의 취지가 유지되도록 무너진 곳을 살피고 보수해야 한다.

규제는 사회상식의 결과물이다. 또 새로운 상식을 만들기도 한다. 새로운 규제, 변화된 규제가 상식으로 굳건히 자리잡도록 하자면 정부는 조직력이 없어 항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국민 다수에게 적절한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그래야만 로비와 압력으로부터 여론이 흔들리지 않고 공정성을 지켜나갈 수 있다. 정부나 입법부로서도 국민의 깊은 이해와 넓은 공감대를 이끌어내야 규제를 무디게 하려는 여러 시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기가 쉽다.

규제는 갈등을 조정하고 조화로운 사회적 이익을 실현하는 최종해법이다. 따라서 일방적이어서는 절대 안 된다. 사회통계와 변화 추이를 수시로 확인해 이익의 균형상태가 유지되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공정성과 형평성이 무너지면 규제의 생명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규제와 관련한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재벌과 대기업은 국민과 중기에 비해 정부의 규제동향에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규제의 향방이 자신들의 이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늘 경제단체 등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국가정책에 반영시키고자 혈안이 돼 있다. 반면 조직·자금·힘과 정보가 없는 가계와 서민들은 규제 변화에 조직적·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실제로 우리나라 법제도는 힘 있고 많이 가진 자에 유리하도록 움직여왔다. 기업 육성·수출장려·재벌 봐주기 정책이 늘 앞서며 가계와 내수 진작, 노동권 보호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이러한 배경 탓에 세계인이 부러워하는 경제기적을 이루고도 그 성과는 골고루 나누지 못했다. 수많은 국민들은 결실을 향유하기는커녕 아직도 수십년 전과 같은 빈곤 속에서 허덕이고 있다. 단지 50여년간 세계무대에서 통하는 10여개의 재벌기업만 탄생시켰을 뿐이다. 현재의 빈익빈 가속 현상은 공정분배에 관한 규제실패가 원인이다.

세계적인 금융·경제위기 뒤에는 항상 특권층을 위한 규제 완화가 있었다. 금융업계 로비에 굴복해 저축은행과 투자은행의 칸막이를 없애고 금융인들조차도 내부적으로 ‘쓰레기’라고 불렀던 저신용도의 금융파생상품 판매규제 완화 때문에 2008년 월가를 비롯한 세계적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규제 실패는 대형 위기를 초래해왔다. 이 대목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사회는 불공정·불평등·불만과 불안으로 가득차게 된다.

MB정부에 이어 현 정부도 ‘손톱 밑 가시뽑기’, ‘쳐부술 원수’, ‘암 덩어리’니 하면서 규제철폐만이 경제를 활성시키고 국민생활을 향상시킬 것처럼 호도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지난 반세기 산업화과정에서 상대적으로 많은 보호와 지원을 받아온 대기업들도 기업 활동에 대한 규제완화를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다. 탐욕이 도를 넘고 있다.

규제개혁은 규제철폐와 규제신설이나 강화를 모두 담고 있는 말이다. 철폐만이 능사가 아니다. 필요하면 강화도 해야 하고 신설도 해야 한다. 정작 중요한 것은 어떤 목적을 위해 규제를 작동시키느냐이다. 과거의 경험과 그에 따른 현재의 실패상을 감안하면 규제개혁의 목적은 기업성장 만큼이나 가계균배를 중시해 가능한 한 많은 국민의 행복증진을 위한 것이 돼야 한다

<임상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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