팽(烹)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팽(烹)으로만 끝나는 게 아니다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1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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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사구팽(兎死狗烹)이란 말이 있다.

토끼를 잡으면 토끼를 몰던 사냥개가 필요 없게 돼 주인이 삶아 먹는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버리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구천의 신하인 범려(范蠡)가 같은 처지인 문종(文種)에게 은퇴를 권유하며 말한 “새 사냥이 끝나면 활이 필요 없고, 교활한 토끼가 죽으면 사냥개를 삶게 된다(飛鳥盡良弓藏 狡兎死良狗烹)”에서 유래했다.

토사구팽이란 말에는 만물 간에 전제돼 있는 하로동선(夏爐冬扇)과 같은 ‘필요-불필요’라는 단순관계, 또는 용인술(用人術)의 의미보다는 인간사회의 ‘신뢰와 배신’의 의미를 더 많이 담고 있다. 특히 권력 주변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배신을 경계하기 위한 용도의 경구다.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은 지난 대선에서 경제민주화를 핵심으로 ‘근혜노믹스’를 설계한 주인공이다. 대선 전부터 ‘박 대통령의 멘토·책사’ 등으로 불리며 정권 창출에 기여한 일등공신이다.

정권이 막 출범한 지난해 3월만 해도 그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국민과 약속한 만큼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했다.

박 대통령의 전경련 회장단 모임에서 “경제민주화가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경제민주화 정책들이 급속히 뒷걸음질 치기 시작한 7월 말엔 “경제민주화는 더 이상 얘기 안 하려 한다”며 입을 닫았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해 11월 ‘국회경제정책포럼’ 주최로 열린 초청강연에서 박근혜정부의 세제개편안에 대해 “조세부담률을 현 수준에 놓고 복지니 뭐니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라면서 “정당이 과감하게 세제개편 방안을 모색하고 부가가치세 증세를 위한 용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문했다.

현 정부의 복지재원에 대해서도 “기초연금 20만원을 주는 것도 가능해서 공약했다”며 “기초연금을 위해 358조원 규모의 예산에서 10조원 미만만 확보하면 되는데 그 예산을 끄집어내지 못하는 것은 예산 구조조정을 하나도 못한 정부의 능력부족”이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권 출범 후 거듭된 공약 후퇴와 경제민주화 자리에 경제활성화가 대신 자리잡는 것에 실망한 그는 지난해 12월 인터뷰에서 “경제민주화 다 잊었고 관심도 없다”며 외면했다.

MB정권 때인 2010년 말 정운찬 전총리는 초대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았다.

이듬해 출범 1년 라디오방송에서 정 위원장은 “지금 양극화가 너무 심각해서 우리 사회가 존립의 위기까지 맞을지 모를 일입니다. 사실 대기업들은 온갖 특혜를 다 받아서 성장하지 않았습니까. 이걸 좀 감안해서 양보 좀 하시라고 부탁을 드리고 있는데도 대기업 총수들은 위원회 무력화에만 골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며 재벌에 가시 돋친 발언을 했다.

또 “대기업 총수는 교체되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인데, 정부가 위원회 활동에 지원은 고사하고 발목만 잡으려 하니 참으로 힘듭니다”라며 정권에도 초강수 발언을 했다.

권력자는 언제나 국민에게 큰 호소력을 가진 인물을 앞세워 ‘표 사냥’, ‘인기 사냥’에 나선다. 사냥의 목적이 달성되면 판 갈이를 위해, 또는 권력자를 우뚝하게 내세우기 위해 공신을 대부분 팽(烹)한다. 배척 행위가 사람에게만 그치면 그나마 조금 낫다. 대부분의 경우는 사람과 함께 그 사람의 주장하는 바까지 폐기해 버린다. 이쯤 되면 팽은 당사자 1인에 대한 배신의 차원이 아니라 상징조작을 앞세운 대국민 사기가 된다.

<임상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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