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 물’로 들어가는 새 정치
‘헌 물’로 들어가는 새 정치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05 2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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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봄바람은 언제나 변화무쌍이다. 매화꽃 진달래꽃 봉오리를 봉긋이 부풀게 하다가도 느닷없이 사정없는 칼바람으로 돌변해 피려던 꽃망울을 얼어붙게 한다. 올해처럼 영등바람과 겹치면 변덕은 더욱 예측 불가다. 하지만 이보다 더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것이 한국 정치판이다. 국회 126석을 차지하고 있는 제1야당이 하루 밤새 간판을 내리고 겨우 창당준비 중인 정치 세력과 손잡아 ‘새 당’ 을 만든다는 선언을 하는 판이다.

‘정치는 생물’ 이라고들 하지만 어리둥절하고 당혹스럽다. 불과 900여일 전만 해도 ‘새 정치’란 깃발을 들고 젊은 영혼들의 정치적 메시아로 등장한 안철수의 새 정치가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것’처럼 건너다보던 민주당과 전격 통합을 선언했다. 당사자들은 담대한 결정이며 진정한 새 정치를 펼치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며 민주주의를 더 잘 하기 위한 고뇌에 찬 결단이라고 한다.

안철수는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새 정치의 핵심이라고 했다.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그는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단일화를 놓고 협상과 겨루기를 병행하다 ‘이제부터 야권단일후보는 문재인’이라는 말을 남기고 퇴장했다. 그런데 새 정치를 외쳐 온 그가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는 민주당과 합친다고 한다. 그러면서 기초지방선거 무 공천 약속을 지키려는 새 정치의 행보가 전격적 통합에까지 이르게 했다고 말한다.

우리들은 지금 이 시점, 이 상황을 냉정한 심판자의 눈으로 평가하고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새 정치보다 좋은 정치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판단의 기준은 안철수 정치 900여일을 돌이켜 보는 것이다. 2011년 9월 6일 당시 언론에 나온 지지율 40% 후보가 겨우 3%의 박원순 변호사에게 서울시장 후보를 전격 양보했다. 1년이 지난 뒤 2012년 11월 대선을 불과 한 달 앞두고 야권 단일후보 경쟁을 벌이던 그는 돌연 후보직을 내려놓는다고 선언했다. 그랬던 그가 이번에는 창당 일보직전 기존 민주당과 손을 잡았다. 아름다운 양보와 물러섬이라는 소리도 있지만 ‘세 번째 홀로서기’는 실패라며 실망하고 걱정하는 소리도 만만치 않다.

그가 말하는 새 정치가 이뤄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몇 가지를 짚고 넘어가야겠다. 첫째, ‘약속의 정치’란 명분이 지난 대선에서 여야가 다함께 공약한 기초지방선거 무 공천을 지키는 것으로 충족 되는가 하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지방선거 무 공천 공약은 지방선거 후보자를 손아귀에 쥐고 온갖 권력을 부리려는 국회의원들이 유권자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앞뒤 재지 않고 내놨던 공약이다. 지방자치 초기, 기초의원 무 공천 때의 형편을 돌아보면 무 공천만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도 남는다. 둘째, 약속의 정치도 중요하지만 예측가능의 정치도 새 정치이고 좋은 정치다. 어제까지 “연대 없다. 당 만들어 반드시 후보를 낼 것”이라며 기염을 토하던 새 정치 기수의 다짐은 믿음의 새 정치와 맞는 것인가 묻고 싶다. 셋째, 민주주의는 절차나 방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되는 것인가. “연대 없다. 새 정치를 위해 독자 창당한다”는 공언은 어디가고 전격 밀실, 뚝딱 통합인가.

안철수 새 정치는 이런 물음에도 답해야 한다. ‘호랑이 잡으려고 민정당에 들어갔다’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모델이라면 그의 길은 험난할 것이다. 분명 ‘헌물에 들어가 새물을 만들겠다’는 것이 철수생각일 것이다. 하지만 잉크병에 웬만큼 맑은 물을 채워도 파란색 일색이다. 그래서 ‘철수 생각’은 기대도 크지만 걱정이 더 크다. 스스로 ‘헌물에 들어 새 정치를 구하자’는 철수생각은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묻고 싶다.

<박기태 서울외국어대학원대학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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