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답게 살아가는 법 배우기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 배우기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0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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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중순쯤이었다. 저녁을 먹고 성근 눈발을 헤치며 공연장에 들어섰다. 만석이었다. 간혹 아이들과 함께한 가족들도 눈에 띄었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로여배우가 6년 만에 연기한다는 모노드라마여서인지 대부분의 관객은 여자들이었다. 작품의 원작은 프랑스작가가 쓴 소설로 많은 사람들에게 호평을 받았다고 한다.

모노드라마속 주인공은 소아암 병동에서 여러 환우들과 함께 투병하고 있는 ‘오스카’라는 10살의 어린아이였다. 오랜 세월 연기로 다져진 배우는 일인 다역의 연기를 혼신의 힘으로 펼쳐보였다. 특히 어린아이의 음성과 행동으로 도플갱어의 영혼인양 몰입된 연기에 관객은 숨을 죽이고 때론 10살 아이의 천진한 모습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껏 뜨거워진 공연장은 겨울밤 문화의 향기로 가득했다. 극 중반을 넘어서면서 모노드라마의 내용은 훨씬 깊어지고 심오해져갔다. 관객들은 더 숨을 죽이고 극의 내용 속으로 흡입되고 있었다.

겨우 12일을 더 살 수 있다는 선고를 받은 아이는 병원자원봉사자 중 가장 고령인 ‘장미할머니’라는 한 자원봉사자할머니만 찾게 된다. 아이가 보는 어른들의 세상은 겁쟁이 거짓말쟁이들로 가득 차 있지만 장미할머니만큼은 믿을 수 있고 변하지 않고 자신에게 진실을 말해줄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지금의 모습과 달리 자신은 힘이 센 전직 프로레슬러였으며 한 해의 마지막 12월에는 하루가 한 달이라고, 그러니 하루가 10년이라고 생각하고 12일을 보내 보자고, 그리고 하느님께 편지를 써보라고 자신 있게 거짓말을 하며 오스카에게 자신을 짓누르고 있는 생각들을 신에게 고백하도록 이끌어준다. 아이는 장미할머니의 말을 믿고 의지하면서 마침내 마음속 신의 모습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우리 삶이란 정해진 답은 없고 누군가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이 아니라 잠시 빌린 것으로 잘 써야한다는 것도 알게 되면서 다른 사람도 사랑하게 된다.

나의 생이 12일 밖에 남지 않았다면 나는 어떠했을까. 어떤 모습일까. 관객 모두는 어느새 모노드라마의 주인공이 돼있었다. 아이는 3일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아이가 쓴 신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속의 ‘하느님 외에는 누구도 나를 깨우지 말 것’ 이라는 한 구절이 무대 위로 떠오른 마지막 씬에도 아무도 자리에서 일어날 줄 몰랐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짧은 시간이지만 따뜻하고 진지하게 살다 죽음을 받아들인 아이의 모습에 모두들 애잔해지고 처연해져서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아이(배우)의 뒷모습을 끝까지 따라가고 있었다.

그랬다. 한 편의 연극이 끝없이 앞만 향해 달려가던 삶의 한 자락을 붙잡았다. 그리고 부단히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게도 했다. ‘죽음’이라는 다소 무거운 주제의 연극 한 편이 쉼없이 내닫던 우리 삶의 한 순간에 쉼표가 된 것 같았다. 연극의 주인공도 배우도 한순간 한순간을 뜨겁게 살아가듯 진심으로 아름답게 살아가는 법도 배울 수 있었다.

공연장 밖은 여전히 겨울눈발이 흩날리고 있었다. 늦은밤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의 행렬이 다시 치열한 우리 삶을 대변하고 있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내내 코끝에 향기가 오래도록 남아있었다.

<이정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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