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밥상과 윤리적인 음식
죽음의 밥상과 윤리적인 음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3.04 21: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0.042㎡는 국내 축산법이 규정한 산란계 한 마리 사육면적이다. 20㎝·21㎝ 꼴이니 케이지(cage)의 가로·세로가 한 뼘 크기다. 2차 대전 후 전 세계로 퍼져나간 ‘닭 공장’을 위한 획기적이고 효율적인 공간이다.

배터리케이지에서는 1950년대에 비해 닭이 3분의 1 사료로 3배나 빨리 자란다. 인공조명으로 알 낳는 시간을 조작하고 수만 마리를 한사람이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밀집에 따른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저하되고 병치레가 많아지면 사료에 항생제를 넣고 성장호르몬제도 사용한다. 부리가 잘려진 채로 1년에 무려 150개 이상의 알을 낳는다. 닭공장의 알 낳는 기계다.

닭장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경우는 죽음이다. 자연상태에서의 닭 수명은 15~20년이지만 케이지에서는 잘 팔리는 무게 1.5~2㎏이 되는 40일경과 달걀의 품질이 떨어지기 시작하는 20개월경 사료의 낭비를 막기 위해 영계와 폐계로 도살된다.

스톨(stall)은 유럽에서 1950년대 좁은 공간에서 많은 돼지를 사육하기 위해 개발됐다. 칸막이 식 사육시설이다.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없애 암퇘지들을 쉽게 살찌울 수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 대부분의 농장에서 사용한다. 수유기 때는 암퇘지를 새끼들 쪽으로 젖꼭지를 내놓도록 눕히고 돌아누울 공간도 없게 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밀집사육에서 가장 큰 문제는 돼지들이 스트레스를 극심하게 받는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서로 물어뜯는 행동(카니발리즘)이 빈발하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새끼돼지의 꼬리를 자른다. 또 어미젖에 상처 내는 것을 막기 위해 태어나자마자 보통 아랫니 4개, 윗니 4개를 잘라낸다.

동물행동학자들은 공장식 밀집축산을 지구상에서 ‘가장 악마적인 시스템’이라고 평가한다. 동물의 자연적인 본성을 억압하기 때문에 아주 잔인하고 비윤리적이라는 것이다.

양과 곱창을 찾는 미식가들은 식당에서 자연방목한 호주산 소를 찾는다고 한다. 골육분 사료에 적응돼 특유의 반추기능이 저하돼 소화기관이 어떤 병에 걸렸을지 모른다며 국내산 소를 피하기 위해서다.

조류독감, 구제역, 광우병, 슈퍼박테리아는 모두 인간의 탐욕이 빚은 인재다. ‘동물복지’를 죽여야만 ‘축산 수익성’이 보장된다는 단견 때문이다. 축산폐수가 흘려 낙동강이 항생제와 호르몬제제에 의해 심각하게 오염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우리가 먹는 고기의 99%는 축사에서 사육된 게 아니라 공장에서 제조된 것이다. 병 덩어리 고기, 항생제 덩어리 육류가 밥상에 오른다. 말 그대로 죽음의 밥상이다.

윤리적인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달걀과 닭고기, 돼지고기를 싼 값에 공급할 수 있는 것은 축산기업들이 동물들을 악랄하게 학대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윤리적으로 사육되지 않은 식재료들이 건강에 치명적이며 환경에도 해를 끼친다는 사실 때문이다.

소비자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고 강하게 조직돼야 죽음의 밥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EU는 산란계 복지를 위해 2012년 배터리케이지 사육을 금지했고, 영국 환경식품농무부는 2016년부터 닭 부리자르기를 금지하는 규정을 제정했다.

마찬가지로 유권자인 국민이 강하게 조직돼야 구성원 대다수에게 불행을 야기하는 사회조건과 인간 삶도 개선된다. 한 뼘 닭장처럼 사람의 삶도 제도나 시대정신, 상식 등의 이름으로 강제된 환경이 있는지 살펴보고 고쳐나가야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인권을 누릴 수 있다.

문제 해결에 참여하지 않는 것은 문제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국민의 선택이 중요하다.

<임상도 논설위원>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