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앞의 인명은 바람 앞의 촛불
돈 앞의 인명은 바람 앞의 촛불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2.25 2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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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후반부터 당시 재계 1위였던 현대그룹은 정주영 회장을 이을 그룹후계자 선정을 둘러싸고 형제의 난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 왕회장의 점지를 받은 5남 몽헌 씨는 자살하고 차남인 몽구 씨와 6남인 몽준씨 중심으로 현재의 모습으로 그룹이 분할·재편됐다.

삼성그룹도 지난 2012년부터 지금까지 장남 맹희 씨와 3남 이건희 회장 간에 상속을 둘러싼 분쟁을 벌이고 있다. 롯데·두산·금호·동아제약 등 국내 유수의 재벌 치고 경중의 차이만 있을 뿐 부자간·형제자매간 ‘돈 전쟁’이 벌어지지 않은 그룹은 거의 없다. 돈 앞에 피도 눈물도 없고 형제부자지간도 없다.

SK그룹 2세 최철원씨(당시 M&M 대표이사)는 화물차 고용승계를 요구하며 SK본사 앞에 1인시위를 한 운전기사를 야구방망이 등으로 때린 뒤 맷값이라며 2천만원을 줘 사회적 공분을 자아내게 한 적이 있다. 재벌 2세의 반사회적 성향으로 빚어진 폭행과 일탈이 수시로 문제가 되고 있다. 양심과 인권도 없는 돈의 냉혹함을 보여주는 사례다.

돈을 노린 강도·살인범죄가 아닌 합법적으로도, 요술방망이가 된 돈 때문에 사람목숨은 안중에도 없는 세상이 됐다.

지난 17일 울산 인근 마우나리조트 체육관 건물이 붕괴됐다. 현장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중이던 부산외대 학생 9명 등 10명이 숨지고 10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따지고 보면 이 사고도 돈 때문에 발생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시설인데도 안전성 보다는 경제성을 우선한 건물을 지었고 관리인력 인건비를 줄이느라 지붕에 높게 쌓인 눈조차 일주일이 지나도록 치우지 않았다. 서울 와우아파트,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가 계속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경제적 효율은 최소한의 안전만 담는다. 안전조치가 충분한 건축을 하면 투자가 늘어 비효율이 되고 비효율적인 안(案)은 만인의 선택에서 제외되는 세상이다. 경제효율 우선 세태는 생명경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아인슈타인은 1949년 미국 잡지 ‘Monthly Review’ 기고문에서 ‘현대 경제사회는 ‘약탈단계’를 벗어나지 못할 것이고 미래사회에 빛을 제시하지 못할 것’이라며 자본주의의 한계를 비판했다. 또 온갖 사회적 병폐를 야기한다고 했다. ‘자본가들의 경쟁과 연관된 이윤동기야말로 자본축적·자본활용의 불안정과 그 결과로 나타나는 심각한 경기침체의 원흉이다. 무한경쟁은 노동의 엄청난 낭비를 유발하며 개인들의 사회의식을 불구로 만든다. 개인을 불구로 만드는 것은 자본주의의 최대 악이다’고 적었다.

‘지금은 자본독재시대다. 자본가들은 주요 정보원(언론, 라디오, 교육 등)을 직·간접적으로 지배한다. 그래서 시민 각자가 객관적인 결론을 얻어 자신의 정치적 권리를 현명하게 활용하기는 너무나 어렵고 대부분의 경우 불가능하다’며 자본주의 극복의 어려움도 지적했다. ‘기술 진보는 노동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아니라 실업만 증가시키는 결과를 낳고 여기에 더해 자본가끼리의 경쟁은 이 상태를 더욱 촉진시킨다’며 노동은 보호를, 자본은 규제를 해야 마땅하다는 입장도 보였다.

현대 자본주의는 돈이 최고가치인 세상이다. 돈은 이제 천륜, 인권, 인명도 쉽게 넘어선다. 세상을 바꾸지 않고는 도저히 치료할 수 없는 병이다.

남보다 많이 가지는 것이 죄악시 되거나 사회적 지탄이 되지 않는 한 인간의 보편적 행복과 사람목숨의 가치는 끊임없이 추락하게 된다. 과연 그런 세상이 가능하기는 할까.

<임상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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