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2.23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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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40~50대 가운데 상당수는 1980년대 대학생활을 했다. 그들은 당시 군사독재정권에 대항해 최루탄 가스를 맡으며 자유와 민주화를 외쳤다. 우리들의 자유를 구속하는 그 무엇도 거부했고, 정당한 절차가 존중되고 소수의 의견도 수용되며 다수가 지지하는 민주제도를 부활시키고자 노력했다.

그 당시 읽었던 이문열 작가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이 주던 충격은 아직도 필자의 뇌리에 생생이 남아 있다. 그리고 아직도 부조리한 사회현실에서 힘겹게 살아가며 절대 권력에 대항하는 사람들을 보면 일종의 향수마저 느끼게 한다. 이 작품의 내용은 어느 시골 초등학교 교실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인간관계를 통해, 사회의 한 단면을 반영하는 것이다.

주인공 엄석대는 학급의 절대 강자로서 온갖 편법과 부조리한 방법으로 아이들을 좌지우지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겉으론 별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반의 질서를 유지하는 대신 어느 정도의 개인적 이익을 챙긴다. 엄석대는 항상 외면적으로 자신보다 전체를 위한다는 명분을 내세운다. 무사 안일한 늙은 담임과는 적절한 선에서 거래를 해 담임과 자신의 이익을 나누어 가진다. 하지만 학급의 질서를 유지하는 본질적인 힘은 폭력이다. 그 폭력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에게도 서열을 두며, 따르지 않는 무리가 있으면 무자비하게 짓밟아 버린다. 한편 전학 온 또 다른 주인공 한병태는 이러한 비정상적인 상황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지만 절대강자를 따르는 반원들과 담임의 제지 아래 좌절하고 만다. 이것은 독재 권력에 대한 의식 있는 한 개인의 항거가 매우 무기력하며, 독재 권력에 대한 우매한 민중의 자발적 복종이 얼마나 큰 불합리를 유발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것이다.

그 후, 서울에서 새로 온 담임의 등장으로 엄석대의 절대 권력이 붕괴된다. 그러나 그것도 권선징악적 결말이 아니라 위로부터 이루어지는 개혁에 대한 민중들의 기회주의적 편승으로 시대적 한계를 서술하고 있다. 하지만 이 작품은 당시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매우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지금까지도 그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 주변에서도 여전히 엄석대와 한병태 그리고 그들을 비호하는 세력과 응징하는 세력이 존재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국가기관 및 대기업을 비롯한 대부분의 직장들은 갑과 을의 관계로 이뤄지는 계층을 형성하고 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갑의 힘으로 을을 속박하는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이와 같은 갈등구조는 근대사회의 ‘테일러 시스템’에 근거한 것이다. ‘테일러 시스템’이란 최고 관리자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시스템으로 그 속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기계부속과 같이 빈틈없이 돌아가야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구조이다. 이러한 시스템은 최고의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의 입장과 맞아 떨어지지만 개개인의 자유와 창의성을 발휘할 수 없는 태생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즉 개인이 자신이 속한 직장에 대해 자부심과 보람을 느낄 수 없는 비인간적인 시스템으로 궁극적으로 창의적이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조직을 떠나게 하는 비효율적인 구조이다.

특히 최고관리자가 직장 내에서 일어나는 갑과 을의 갈등관계나 비정상적인 갈등관계 문제를 양비론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면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뿐더러 결국에는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과 같은 유형의 인간이 비정상적으로 권력을 독점하는 것을 묵인하게 될 뿐이다. 조직의 관리자가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조직 내에 비정상적인 부분이 없는지 확인하고, 만약 엄석대과 같은 존재가 있다면 단호하게 처리해, 직원들이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구글의 ‘20% 타임제’처럼 직원들이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 발산할 수 있는 환경과 공정한 분위기를 마련해 주는 일이다.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엄석대과 같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들은 멀리 떨어져서 보면 멋지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온통 썩은 냄새가 진동하고 타인과 그 조직을 망가뜨리는 존재다. 우리들에게 이제 더 이상 그런 ’일그러진 영웅‘은 필요하지 않다.

<김갑수 두남학교 파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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