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탕 문화
목욕탕 문화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8.07.03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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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본래 목욕탕이 없었다. 여름에는 동내에서 멀지 않은 개울가에서, 능수버들이 늘어져 있는 후미진 곳에서 아낙네들은 적삼을 걸친 채로 몸을 씻었고, 남정네들은 우물가에서 등목을 하였다. 때를 민다고 하면 부엌이나 헛간에서 자연산 수세미로 처리하는 정도이었다. 비누가 소개되기 전이어서 양잿물 비누는 옥양목 빨래하는 데나 쓰였다.

대중을 위한 공동 목욕탕 문화는 일본이 잘 발달되었고, 우리나라에 소개하였다. 그들의 탕 안은 우선 조용하다. 우리처럼 왁자지껄 하지 않다. 아이를 데리고 와도 떠들고 뛰어다닐까봐 여간 조심하지 않는다. 다음이 그들의 남을 배려하는 생활이 그렇듯, 옆 사람에게 물이 튈까봐 서로가 조심한다. 그러나 모르는 사람끼리 때밀어주는 일이 거의 없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모르는 사람끼리 등을 밀어주는 일은 사라졌다. 하기는 등을 밀어주는 기계도 설치되어있다. 옛날에는 모르는 사람끼리도 부탁하면 서로 등을 밀어주었다. 이것이 동포애이고 스킨십(skin-ship)이다.

대학선생과 학생이 목욕탕 안에서 마주쳤다. 학생은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선생은 웃고 답례하며 학생의 쌍방울(거시기)을 바라보았다. ‘장군감이야’ 나지막하게 읊조렸다. 학생은 웅크리며 탕 속으로 도망갔다. 탕에서 때를 불리고 나와 선생이 학생의 등을 밀어주었다. 학생도 선생의 등을 밀어주었다. 그러고서 얼마가 지났는데 학교 안의 운동장 구석에서 어떤 학생이 헐레벌떡 달려와 선생한테 꾸벅 인사를 하고 달려간다. ‘야, 너 누구야?’ ‘예, 목욕탕에서 스킨십한 학생입니다.’

부자간, 모녀간(?)에도 때 밀어주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개인주의(?), 자본주의가 이상하게 발달되어서 가슴이 아프다. 그러나 늙고 힘이 없는 사람에게는 필요하기도 하다. 필자가 언젠가 ‘비굴하게 살지 마시오!’라는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듣고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목욕탕에 가서, 때 미는 사람에게 몸을 맡겨보았다. 이 사람, 때 밀기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모양이다. 자기는 수영팬티를 입고 손님은 전라로 누워 있으니 누워 있는 사람, 비밀이 탄로된 것 같아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겨우 끝냈다. 같이 벗고, 같이 입어야 하는 서양의 누드촌이 떠올랐다. 누드촌에 관광하러 가서도 입장하려면 똑같이 누드로 들어가야 한다.

바보들은 바보들끼리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면 재미있고, 편안하다. 무식한 사람들은 무식한 사람들끼리 살아야 편안하다. 허세부리는 사람은 같이 허세를 부려야 신바람이 난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만 군대 얘기가 재미있다. 여기에 기피자나 정직한 사람이 잘 못 끼어들어 진지하게 대하면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그들은 긴장하다가 재미없어 흩어지게 된다. 정치꾼들의 이야기가 ‘끼리끼리 해먹는 문화’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유권자들을 현혹시켜 당선만 되면 그만이다는 식의 끼리끼리 빨가벗고 살기식의 문화이다. 울산에서도 선거판에 끼리끼리 해먹으려다 혼이 나고 있는 무리들이 있다. 말로는 공격적 경영이지만 정도를 벗어난 누드 춤을 추면서 멀쩡한 사람을 같이 누드 춤을 추자고 하여 곤욕을 치르게 하였다. 목욕탕 문화는 ‘깨끗이 하자’는 것인데, 선거문화는 ‘되고 보자’는 것이어서 ‘목욕재계’를 선거꾼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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