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수성 칩과 친자확인 검사
감수성 칩과 친자확인 검사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2.1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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컬러TV가 나오기 10여년 전인 1970년대 초에는 흑백TV 보급도 보편화되지 않았다. 열집에 한 대, 스무 집에 한 대꼴로 있어 ‘여로’나 ‘형사 콜롬보’ 등 인기프로그램이 방영되는 날에 TV 있는 집은 문전성시를 이뤘다.

이즈음에 인기드라마 ‘형사반장’도 방영됐다. 최불암, 김상순, 조경환씨 등이 열연했다.

당시 수사극은 인간성 회복과 사회적 책임의 맥락을 중시했다. 탐문수사를 통해 피의자의 불행했던 성장환경, 또는 모범생이었다, 절대 남을 해칠 아이가 아니었다는 주변인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그래서 극 말미에는 항상 최불암씨가 독백을 통해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해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남기곤 했다. 수사경찰을 지칭하는 형사도 극 속에서는 형이나 아버지처럼 친근하게 그려지기도 했다.

‘수사반장’은 범죄수사물의 형태를 갖췄지만 내용적으로는 휴먼다큐멘터리에 가까웠다. 삶의 비상구로서의 범죄, 경쟁사회 부작용의 하나로서 범죄현상을 풀어냈다. 사이코패스란 말도 국내에 도입되지 않았고 유전자나 뇌파 검사를 통해 범죄형 인간을 분석하던 시대도 아니었다.

요즘의 범죄수사물은 날로 잔혹하고 교묘해지는 범죄에 대해 과학수사, 심리수사, 프로파일링(Profiling) 기법, 탄도 검사, DNA검사 등 첨단기법의 수사 형태가 주류를 이룬다.

근래 미국드라마 중 CSI 시리즈가 단연 인기를 얻고 있다.

CSI[Crime Scene Investigation(Investigator):과학수사대(원)]는 미국 CBS 드라마로 제리 브룩하이머가 제작해 2000년도부터 방영했다. 비슷한 제목의 NCIS (Naval Criminal Investigative Service:해군범죄수사국)도 덩달아 인기다.

현장을 면밀하게 조사해 범인이 남기고 간 증거와 사건의 정황을 수집하는 과학수사요원을 의미하기도 하는 CSI는 두 개의 믿음을 갖고 일을 한다. ‘범인은 사건현장에 틀림없이 증거를 남긴다’와 ‘죽은 자는 말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이들은 법의학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뿐만 아니라 범인의 심리까지도 꿰뚫어 볼 수 있을 만큼 고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 살인사건의 경우 세포 하나하나의 이상징후까지도 분자생물학적인 방법으로 분석해 범인 검거에 필요한 단서와 방향을 제시한다.

시리즈 속에는 이색적인 느낌으로 다가오는 게 둘 있다. 감수성 훈련과 부부 슬하인데도 친자확인이 필요한 상황이 너무도 많다는 것이다.

사건현장의 참혹함과 총알이 날아드는 위기의 순간을 많이 겪는 수사관이란 직업 특성상, 정서 고갈을 막기 위해 해마다 정기적으로 감수성 회복 훈련을 받아야 한다. 감수성이란 참지 않고 울고 웃고 화내는 것이다. 감수성 고갈은 비단 수사관이나 경찰에게 국한된 내용이 아니다. 현대인 모두가 겪는 일이다. 가족과 가정도 지키기 버거운 빡빡한 현실이고 정감이라고는 비집고 들어갈 여지조차 없는 무한 경쟁의 사회다. 연례적인 훈련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목덜미에 ‘감수성 칩’을 주기적으로 이식해야 하는 세상이 오지나 않을까 걱정된다.

친자확인을 위한 유전자검사가 수사과정에서뿐 아니라 미국사회에서 보편화돼 가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남녀와 부부의 정조관념도 화석 속에서나 볼 수 있는 날이 머잖은 것처럼 느껴진다.

선지자들의 수많은 경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세상은 인간성 결핍과 불신이 깊어지는 미래로 우리의 등을 떠밀고 있다.

<임상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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