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라, 골라
골라, 골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2.09 20:4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리듬을 섞어 외치는 상인의 소리가 발길을 잡는다. 고만고만한 물건들이 섞인 진열대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다. 물건을 잔뜩 쌓아놓은 진열대는 편평하고, 밑바닥까지 훑을 만큼 깊거나 높지도 않다. 물건을 고르는 이도 파는 상인도 보채는 일이 없다. 그저 묵묵하게 선택하고 값을 치를 때까지 기다린다. 상품의 질은 보잘것없지만 부담 없는 가격에, 가끔 내게 딱 맞는 물건을 발견할 때도 있다.

상품을 고르는 일부터 배우자를 선택하고 일자리를 찾는 것까지 사람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다. 굳이 프로스트의 ‘가지 않는 길’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누구나 선택의 기로에서 흔들렸던 기억을 가졌을 것이다.

선택이 쌓여 관계를 만들고 인생을 만든다. 잘했든 못했든 혹은 능동적이든 수동적이든 선택은 시간이 지나면서 그 값어치가 매겨진다. 또한 선택의 책임은 몇 갑절로 다시 되돌아오기도 한다. 선택을 하는 것도 선택을 당하는 것도 그래서 어렵다.

얼마 전에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신입사원을 뽑는 방법을 바꾸겠다고 했다가 금세 기존의 방식대로 되돌아간 사건이 있었다. 물론 적은 비용으로 최대 이익을 얻는 것은 기업의 오래된 존재 이유이고, 적재적소에 맞는 인재를 가려 뽑는 일은 기업의 당연한 권리일지도 모른다.

특정 기업에서 신입사원을 채용하는 일에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던 것은 걸러내기식 혹은 누군가에게 특혜를 주는 잣대를 들이대서다. 추천 인원의 차별은 대학 서열화, 남녀차별, 지역차별을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선택의 잣대가 스펙이나 인맥 따위의 조건에 맞춰 휘어지는 고무줄보다 딱딱하지만 공정하고 엄격한 막대이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으리라.

아이와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시청을 하는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있다. 시즌2를 맞이해 ‘룰 브레이커’란 소제목을 붙인 오락물이다. 지난 회기보다 자극적인 상황이 펼쳐지고, 복잡한 규칙을 앞세운 게임을 통해 매회 우승자와 탈락자를 가른다.

게임 도중에 한 출연자가 이름표를 잃어버린다. 함께 당락을 겨루는 이들이 탁자에 놓인 이름표를 훔쳐 돌려주지 않은 것. 게임을 참여할 기회 자체를 뺏긴 그 출연자는 망연자실한 채 대부분의 시간을 흘려보낸다. 프로그램 말미에 이름표를 돌려받아 게임을 하지만 결국 그는 팀원의 거듭된 배신으로 탈락자가 된다.

기회를 뺏긴 자와 도둑질 한 자와의 대결에서 도둑질을 한 자들이 승리하다니, 이름표를 훔치는 장면을 그대로 살린 편집에 할 말을 잃었다. 합세한 출연자들이 혐오스러울 정도였다.

논란에 뒤를 이어 비도덕적인 출연자를 옹호하는 듯한 방송국의 입장을 담은 발표는 결국 프로그램의 공정성과 품질을 스스로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일등이 되기 위해, 혹은 생존을 위해 배신을 일삼고, 편법을 살려 더 큰 세력을 규합해 상대를 제압하는 방식은 과정이 아닌 결과를, 이긴 편의 논리를 앞세운 방식은 현실과 똑같았다. 시청률을 담보한 과도한 포장이나 마케팅에 내가 소비돼 버리는 것만 같아 화가 났다.

보르헤스의 ‘끊임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이라는 소설 속엔 우리의 현실과는 다른 세계가 나온다. 즉, 시간이 없다. 끊임없는 갈림길의 어느 곳이든 내가 존재한다. 그런 세계에서 선택은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허나 시간의 지배를 받는 우리는 선택을 하고 선택을 당한다.

오늘도 누군가는 선택의 갈림길에 다다를 것이다. 길을 택하기 전에 잠시 침묵하라. 침묵 속에서 곰곰이 되새기다보면 가고자 하는 길이 보이는 경우가 많다. 일단 무엇을 선택했다면 자신을 믿고 묵묵히 걸어보자. 어디선가 ‘골라, 골라’를 외치는 우렁찬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박기눙 소설가>


인기기사
정치
사회
경제
스포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