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는 ‘내 분신’을 뽑는 일
투표는 ‘내 분신’을 뽑는 일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2.04 2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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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겉돌고 있다. 민의를 제대로 담지 못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또 선거철이 다가오고 있다.

다수결 원칙을 감안하면 민주주의는 최소 과반의 민의만 수용한다. 거기에 국민 직접참여가 아닌, 대의정치라는 시스템을 고려하면 민의 수용률이 20~30%대까지 밀릴 수 있다. 최악의 경우 국민 손으로 직접 뽑은 정권인데도 지지율이 10%대를 맞게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근래 이탈리아, 아일랜드, 스페인과 일본이 그러했다.

정치가 민의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현상은 정치시스템을 통해서도 설명이 되지만 시간의 진행을 통해서도 잘 드러난다.

대통령 등 선출직 공무원은 정책 내용을 잘 알고 있고 신용도가 높은 인물이라면 문제될 게 없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당선되자마자 민의의 상당부분을 등지게 된다. 현실정치에서 맞닥뜨리는 반대와 저항, 로비 등으로 당초의 민의는 자꾸 뒷전으로 밀려나게 된다. 임기 중반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진다. 재선을 염두에 둔 정치인이라면 임기 말 또다시 유권자에게 아양 떠는 제스처를 취한다. 이렇게 해서 4~5년의 임기가 지나간다.

대동소이한 반복을 거듭하면서 지금, 대통령은 18대, 국회는 19대를 이어오고 있다.

시끄럽고 번거롭고 비효율적이기도 한 대의정치는 민주주의가 계속되는 한 바뀌지 않는다. 당장 대체할 대안체제가 없을 뿐 아니라 더 효과적이고 고성능인 시스템이 나올 가능성도 적다.

정치의 민의 역행 또는 평행 현상은 시스템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문제다. 유권자와 정치대리인(선출직 정치인)의 문제이다.

작년 3월말 국회 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국회의원 296명의 재산(2012년말 기준)은 평균 94억9천만원인 것으로 나타났다. 약 2조원인 정몽준 의원을 포함해 재산이 1천억원 이상인 2명을 빼면 새누리당 149명의 평균재산이 33억여원, 민주당 127명은 13억여원으로 집계됐다.

또 2008년 18대 국회의원 당선자의 경우 병역대상자 중 20%가량이 군복무를 하지 않았다. 나이는 평균 54세이며 법조(60명, 20%), 당료(45명), 관료(42명), 언론인(36명), 교수·연구원(25명) 등 5개 직업군 출신들이 71%를 차지했다.

우리 국민들이 ‘제 권리를 대리할 정치인’으로 선출한 사람들이다. 소위 일류대 출신이면서 재산이 30억 원이 넘는 판·검사와 고위공무원을 뽑아왔다.

정치판에 내 목소리를 전달하고 내 이익을 관철시키려면 나와 같은 처지에 있거나, 적어도 매우 비슷한 입장에 있는 사람을 대리인으로 보내는 게 기본이다. 투표권자 제 1의 원칙이다. 그래야 내 궁박한 처지가 정책에 조금이라도 반영되는 것이다.

내가 동네구멍가게 주인이고, 중소기업 비정규직 노동자이고, 남편의 얄팍한 유리지갑에 네 식구의 생계를 걸고 있는 주부인데, 수십억 재산가인 전문직출신 정치인이 어찌 내 사정을 알며, 어찌 내 이익을 대변해 줄 수 있겠는가. ‘내 처한 현실’과 ‘내 대리인을 뽑는 기준’간의 간극이 너무나도 크다. 실로 놀라운 본말전도이다. 이런 현상 때문에 정치가 국민의 여망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6·4지방선거에 출마할 시·도지사와 교육감 예비후보 등록이 4일부터 시작됐다. 만사가 사람의 일이고 좋은 인선이 좋은 제도보다 효과가 크다. 특히 파급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는 선출직의 인선은 더욱 중요하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인선의 첫째기준이 돼야 한다. 지식의 많고 적음이나 언변과 능력 등은 차후 문제다.
선거는 성공한 사람이나 특권자를 뽑는 게 아니라 유권자 자신의 분신을 뽑는 일이다.

<임상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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