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내’라는 것
‘인내’라는 것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4.01.27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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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어린 학생 같이 늘 등에 가방을 메고 다닌다. 요즈음은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등에 가방을 메는 것이 대세다. 다른 것은 차치하고라도 편하기 그지없다. 그런대로 남 보기에 남루하지 않은 뉴패션의 캐주얼 가방을 멘다는 것이 즐겁다. 오랫동안이어서 그런지 이제는 습관이 된 듯 당당한 모습이다. 두 팔을 흔들면서 걸어가는 것이 나름대로 건강을 유지하는데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출퇴근길 동네 주위를 걸어가다 보면 여러 모습이 목격된다. 건너편 건널목의 신호등에 빨간불이 켜져 있다. 이때는 어느 누구도 기다려야할 의무적인 시간이다. 기다리는 보행자는 다섯명. 잠시 후 파란불로 바뀌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는데 그 중 남녀 네명은 아무렇지 않은 듯 대각선(?)으로 건너가 버린다. 필자만 기역자(ㄱ)로 바르게 건너고 있으니 내가 법을 어기는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들은 분명 조금도 ‘인내’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다.

‘인내’(忍耐)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괴로움이나 어려움을 참고 견딘다는 말로 그것과 비슷한 말에는 ‘수련, 수행, 자제, 억제, 자족, 극복, 내인, 내구, 감내’라는 말까지 나열돼 있다.

‘인내’의 대표적 예는 불교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안거’(安居)라는 수행제도인데 음력 10월 보름부터 정월 보름까지, 4월 보름부터 7월 보름까지, 1년에 3개월간씩 두 차례다. 각각 ‘동안거’와 ‘하안거’라 해 산문 출입을 자제하고 ‘수행’에만 정진하는 것을 말한다. 원래는 출가한 수행자들이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돌아다니면서 생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우기(雨期)에 땅속에서 벌레들이 기어 나와 밟혀 죽을 수도 있어 돌아다니기 곤란했다. 그런 연유로 이 제도가 행해졌다 한다.

지난주에 너무 놀라운 일을 봤다. 시내에서 일을 보고 버스를 타고 귀가하는 길이다. 러시아워라 버스에는 승객들도 제법 있었다. 운전하는 기사는 보아하니 30세가 조금 지난 젊은 사람이다. 위험하게도 이어폰을 낀 채 상대와 계속 통화를 하는 거다. 개인생활에서부터 세상이야기까지 마치 종편TV의 패널이 말하듯 토론식 대화법이다. 장장 30분 동안을 대화하면서 운전하는데 정말 가관이다. 하루 일과가 끝나고 귀가하는 승객들은 마지못해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 이 운전기사는 최소한의 운전규칙이나 소양교육도 배우지 못한 것 같다. 종착역에 도착해서 하면 될 텐데 ‘인내심’이라곤 털끝만큼도 없이 이 무서운 일을 펼치고 있는 거다.

한 가지 더 보태어 이야기하자. 어제는 오래간만에 생맥주를 파는 호프집에서 친구와 함께 술잔을 기울였다. 재미나는 세상살이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옆자리에 네 명의 손님이 긴장한 듯 자리에 앉아 있다. 한가한 사람이라 치부할지 모르지만, 옆자리의 술판에 저절로 관심이 가게 됐다.

상황인즉, 시간이 잠시 흐른 후 무슨 영문인지 화가 난 남자가 갑자기 언성을 높여가며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언행이 마치 조폭이나 다름없다. 테이블 위에다 술잔을 빙빙 돌려가면서 상대를 향해 연거푸 말을 쏘아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큰 사건이 벌어질 것 같은 모양새다.

다행히 착하게 순응하고 있는 상대는 어딜 보아도 손윗사람인 듯 그래도 점잖은 품위를 취하고 있다. 내구력이 강한지 그렇게 모진 말을 해도 참고 있는 것을 보니 상당한 감내의 소유자다. 아니 불당에서 몇 년 간 수양한 좌선훈련과 명상요법에 달인이 된 듯한 사람이다. 모질게 말을 하는 그 사람은 너무나 비인간적인 반면, 거친 말을 자연스레 듣고 있는 인내의 소유자는 훌륭한 비폭력자 ‘만델라’ 같다. 누가 승리자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알 수 있을 테다.

17세기 프랑스의 우화작가 ‘라퐁텐’은 ‘인내’하면서 시간을 생각하면 힘이나 노여움이 이루는 것 이상의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했다. ‘인내심’이 강하다는 것은 우리들의 정신 속에 숨어 있는 ‘보물덩어리’와 다를 바 없다.

<김원호 울산대 국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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