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련의 분석
미련의 분석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07.12.27 2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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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문 태

논설실장

미련(未練)은 순수 우리말의 ‘미련’과 구별되는 말이다. 앞의 미련(未練)은 ‘아직도 어떤 일에 단련되지 못 했다. 아직 다 되지 못 했다.’는 본래의 넓은 뜻이 인연(因緣)을 끊을 수 없어 아직도 그 인연에 매여 있다는 뜻으로 좁혀져 사용된다. 그래서 한글 사전 풀이에 아직도 생각을 끊을 수 없는 마음의 상태, 단련되지 못한 상태로 나와 있다. 뒤의 ‘미련’은 ‘미련하기는 곰 같으니라고’에서처럼 고집스런 바보의 행동을 말한다. 곰을 이렇게 비하하는 것은 단군신화의 곰의 후손(단군왕검)으로서 섭섭한 말이다. 고집스럽게 한 가지 일에 묵묵히 전념하는 것이 얼마나 귀중한 삶의 태도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다.

아직도 미련을 가지고, 이제 미련을 두지 말자, 또는 미련 없이 떠난다는 말은, 시제(時制)를 두고 보면 과거가 중심이 되는 말이다. 이 미련의 끝이 과거에 있음은 우리의 정서(情緖)가 과거지향형임을 가리키고 있다. 이 점은 순수한 우리말에서도 관찰 된다. ‘어제’와 ‘오늘’은 순수한 우리말인데 ‘내일’은 한자어의 올來 날日이다. 미련 없이 떠날 때는 내일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을 때이다.

미련의 말뜻이, 아직도 어떤 일에 단련되지 않았다, 익숙해지지 않았다는 것은 아마 불교의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수행지침을 따르기에 부족함이 많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는 것 같다. 출가할 때의 초발심(初發心)을 수행할 때 계속 유지하고 있으라는 계율은 가족, 연인, 이웃, 하물며 집에서 키우던 개와 닭, 그리고 우물가의 앵두나무와 버드나무에게 까지도 그동안에 쌓였던 정(情)을 끊고 출가했는데 그때의 모진 마음을 계속 갖고서 수행에 힘쓰라는 것이다. 그렇게 하려면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가야 하는 것이다.’ 이때 혼자 가지 못하고 자꾸만 과거로 마음이 쏠릴 때, ‘나는 아직도 그동안의 인연을 매몰차게 끊을 만큼 단련되지 못했다’의 탄식에서 ‘미련, 미련, 미련 때문이야!’ 라고 외치는 것 같다. 그래서 미련은 ‘있고 없고’의 상태로 쓰인다.

미련의 수채화 같은 모습은 산골의 동네 어귀에서 헤어지는 두 사람한테서 관찰된다. 서로 절을 하고 잡고 있던 손을 겨우 내려놓으며 다시 절을 하고 두어 발짝 물러서며 다시 두 손을 흔들며 또 절을 하기를 몇 번이나 하면서 한 사람은 동구 밖까지 따라오고 떠나는 사람은 계속 뒤를 돌아다보며 고갯마루까지 올라서서 아직도 저 아래 동네에 서 있는 사람을 위하여 두 손을 한참 흔들다가 겨우 돌아서서 발걸음을 떼는 것이 모두 미련 때문인 것이다. 이별하는 것이 훈련되지 못해서 나오는 행동이다.

서양 사람들은 대도시를 제외하고 작은 도시에서는 거의 모든 사람이 처음 보는 사람한테도 간단한 눈인사 정도는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한테는 참 어색한 상황인 것이다. 우리는 자주 만나 정이 들어야 인사를 하지 처음 만나는 사람한테 인사를 건네면, 특히 이쪽은 남자고 상대방이 여자라면 ‘성희롱’으로 걸려들 수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서양 사람들은 서로 마주치고 웃음을 머금은 눈인사가 끝나고 갈라서게 되면, 금방, 거의 순식간에 얼굴표정이 무표정했던 원상태로 돌아간다. 요즈음 우리 젊은이들이 이렇게 되어가는 것 같아서 서운한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우리네 삶은 인사를 할 정도의 인연이 있으면 동네에서 인사를 한 뒤에도 뒤돌아보고 인사하고 또 뒤돌아보고 인사하는 미련의 연속이었다. 아름다운 우리의 풍습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상당히 다르다. 즉, 미련 없이 떠나며 내일을 준비할 때도 있는 것이다. 독자들은 왜 이 시점에서 미련을 분석하는지 가늠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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