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
사노라면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2.26 2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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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노라면 언젠가는 밝은 날도 오겠지/ 흐린 날도 날이 새면 해가 뜨지 않더냐/ 새파랗게 젊다는 게 한밑천인데/ 째째하게 굴지말고 가슴을 쫙 펴라/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80년대 후반, 운동권 가요처럼 된 이 노래를 참 많이도 불렀다. 독재정권에 맞서 가투에 나서지 못한 비겁함을 막걸리 집에서 자책하며 부르던 마지막 합창곡이다. 노래하는 우리는 비장하면서도 눈물과 회한 그리고 새로운 다짐을 나누기도 했다.

우리는 예로부터 희망이 없을 만큼 힘들어서 ‘내일’에 해당하는 순우리말이 없었다고 한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으니 그런 우리말이 있을리 없다는 분석이다. ‘그제, 어제, 오늘, 내일, 모레, 글피’ 등 과거, 현재, 미래의 날을 뜻하는 말 중에 유독 내일만 한자라 그런 분석이 나온 모양이다.
사실 그게 아니다. 아무리 힘들었어도 사람사는 세상에 희망을 가질만한 내일이 없었겠는가.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계림유사(鷄林類事)에 ‘그제’는 ‘기재(記載)’, ‘어제’는 ‘흘재(訖載)’, ‘오늘’은 ‘오날(烏捺)’, ‘내일’은 ‘할재(轄載)’, ‘모레’는 ‘모로(母魯)’라고 읽는다는 설명이 있다. 내일은 ‘ㅎ’음 아닌 ‘ㅇ’음에 가까운 ‘올재’로 읽어 ‘올날’, ‘오는 날’이니 ‘희망을 담고 오는 내일’이다.

-또 한 해가 저물어간다. 세월이 쏜살같다는 말 그대로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안녕들 하십니까’란 대자보가 유행이다. 잠자던 대학가의 울림치고는 새롭고 장하다. 오랜만에 보는 지성인들의 자기 반성을 불순하게 볼 것이 아니라 시대의 안부를 묻는 화두이자 우리 사회의 아픔을 대변하는 목소리로 들어야겠다.
돌아보면 너나없이 올해는 정말 안녕할 수 없었던 것 같다. 북한의 전쟁위협으로 새해를 열더니 ‘갑’의 횡포에 분개하면서 봄을 보냈다. 국정원 대선개입이나 부정선거 시비, 밀양 사람들의 절규를 보며 또 여름을 보냈다. ‘국민 행복’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대통령은 사안마다 원칙, 법대로, 오불관언이란 말을 자주 했다. 비판의 목소리엔 종북딱지를 붙이다가 가을을 다 보냈고 겨울에 들자말자 ‘안녕들 하십니까’ 화두와 철도노조 파업으로 어수선한 연말을 맞았다.

-사람들은 내일은 내일의 해가 뜬다고 말한다. 사람이 희망이라고도 했다. 힘들고 지친 순간마저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말로 서로를 위안하고 달랬다.
그렇다. 올 한해가 아무리 힘들었고 불통의 시간을 보냈다 해도 ‘오는 날’인 ‘올재’에 희망을 걸어야겠다. 오늘의 절망은 지나갈 것이고 새해는 분명 희망으로 다가온다. 사람들은 돈 걱정 없고 취업난, 전세난, 교육비에서 해방되고 범죄와 가족 해체의 험한 세상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할 것이다.
“네가 깜짝 놀랄 만한 얘기를 들려주마. 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할 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뭐 별다른 걱정 없다.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이렇다 할 고민 없다.”
정말 세상을 이렇게 살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개인적으로 별일 없이 사는 새해가 됐으면 좋겠다.
사노라면 내일은 또 내일의 해가 뜬다. 이렇게도 저렇게도 살겠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새해였으면 한다.

<김잠출 국장·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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