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과 동짓날은 신생의 전환점
성탄절과 동짓날은 신생의 전환점
  •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13.12.25 1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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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울수록 빛은 더 밝다. 성탄절은 구원의 빛을 주고 동짓날은 태양의 재생을 기억시킨다.

두 축일은 일년중 가장 춥고 어두운 시기에 있다. 성탄절은 구세주의 탄생을 기념해 구원의 촛불을 켠다. 동짓날에는 태양의 부활을 위해 팥죽을 끓인다.

성탄일인 12월 25일과 우리의 동짓날(올해는 12월 22일)은 절묘하게 겹친다. 불모의 시간에서 소생의 시간으로 넘어간다. 이때 희망의 빛을 비춤으로써 안도감을 준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는 봄의 파종에 쓸 씨앗이 곳간에 있기에, 지난 가을의 추수로 음식을 장만하며 이 날을 반긴다.

여러 대를 이어 모태신앙을 계승한 한 벗은 범신론자(필자)가 제시한 이같은 추론이 의미있다고 평가했다. 즉 예수의 탄생일을 동지와 연관시켜 계절적 의미로 음미하는 것은 좋은 착상이라는 것이었다.

‘안드레아’란 세례명을 가진 그 벗은 “일월성신의 운행을 깊이 연구했던 옛 사람들은 가장 어두운 시간에서 하루에 수십초씩 낮이 길어지는 시점에 주목했을 것이며, 그러한 관점이 동양에서는 작은 설로 여긴 동지였고, 서양에서는 일년중 가장 큰 축일인 성탄절을 설정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우리 두 범신론자와 모태신앙자는 좀 더 탐구를 한 결과 서양에서도 동지와 성탄절이 같은 의미로 쓰인 것을 확인했다.

즉 고대 서양에서는 12월 21일부터 정월사이를 동지(Winter Solstice)로 여겼다. 또 그 시기를 현대 성탄절과는 다른 의미의 성탄절(Yule)이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 기간 북유럽 사람들은 두려움으로 집안에 가만히 갇혀있기도 했다는 것이다. 우리는 팥죽을 펄펄 끓여 적극적으로 추위와 어둠을 밀어낸 것과 다르다.

결국 동지와 성탄절은 이질적인 것이 아니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둠과 밝음의 경계에서 예민하게 반응한 사람들이 설정한 축일이라는 생각을 갖게 됐다.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기념하는 부활절이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춘분(春分)과 시기가 겹치는 것도 같은 의미라는데 의견을 모았다.

그리고 성탄절 선물 얘기로 이어졌는데, 동짓날도 같은 유사한 선물 행사가 있는 것으로 파악했다.

성탄절에는 종소리와 함께 붉은 모자를 쓴 할아버지를 만난다. 누구나 산타가 될 수 있는 이 날에는 ‘회심의 선물’을 건넨다. 잘 준비된 깜짝 선물은 한해의 희노애락을 결산할수 있다. 이는 미국 소설가 오 헨리의 ‘반전의 선물’에서 유래한 바 크다. 남편은 시계를 팔아 아내의 머리빗을 준비했는데, 아내는 자신의 탐스런 머릿결을 잘라 시계줄을 준비했다는 얘기다.

우리의 동지에는 농사일정을 정리한 책력(冊曆)을 선물했다. 오늘날 달력과 같은 이 책력은 선비들 간에 예쁘게 장정해서 교환했고, 임금이 옥새를 찍어 신료들에게 나눠주기도 했다. 그 풍습은 오늘날에도 달력을 나눠주는 것으로 이어져 오고 있다.

또 서는 칠면조를 구워먹고 동은 붉은 팥죽을 먹는다. 고기를 굽거나, 팥의 붉은 색은 양(陽)의 기운이다.

성탄절과 동짓날 두 시기가 일치하는 것은 동양과 서양이 똑 같이 소생과 신생의 의미를 추구했기 때문이라고 볼수 있다. 불모에서 소생의 시간으로 바뀌며, 어둠에서 빛의 시간으로 들어가는 이 시기가 주는 의미는 각성과 희망이다.

동방박사가 별을 보고 예수의 탄생을 보러온지 2013년째, 각성과 희망을 떠올렸다.

<김한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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